막스 리히터의 '잠 Sleep'이라는 앨범이 있다. 러닝타임은 무려 8시간. '8시간'과 '잠'의 조합이라니. 당신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그것이 맞다. 이 앨범은 자장가로 작곡되었다. 정말 막스 리히터가 이 앨범을 풀로 틀어놓고 (내가 힘들게 작곡한 이 음악을 듣건 말건 상관없으니 그대요 편히) 주무세요, 그러면서 작업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앨범이다.
2016년 호주 시드니 공연에서는 150 여명의 관객에게 침구를 배정하고 거기에 누워 밤 11:30부터 다음 날 아침 7:30까지 계속되는 라이브를 듣게 했다. 8시간의 공연인 데다 침구까지 제공하는 그 공연의 티켓값은 대략 8만 5천 원에서 30만 원 사이. 아마도 무대와 가장 가까운 침대 좌석이 30만 원이었겠지. 이 돈을 내고 정말 잠을 자는 사람이 있었을지 없었을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사 멜로디가 반복되는 '잠' 트랙을 하염없이 누워 들으며 8시간 내내 초롱초롱하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드문드문 잠에 빠지다가도 티켓값 생각에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내가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겠는데 아까와 비슷한 그 음악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다 다시 잠에 빠져드는 사이클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유튜브에서도 이 앨범의 8시간짜리 음악을 모두 들을 수 있다. 도전? 정말? 하지만 물리적으로 다 듣기는 힘든 노릇 아닌가. 16부작 시리즈를 유튜브 요약본으로, 그것도 2배속으로 돌리는 마음으로 8시간 중 한 구간을 소개한다면 'Dream 3' 트랙이다. 러닝타임 10분. 8시간 러닝타임 중 10분의 베스트라니 괜찮은 추천이지 않은가.
'Dream 3'이 시작되면 구름이 잔뜩 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도시 한복판에서 들리면 어울릴 것 같은 피아노의 단조로운 건반 터치가 3분 정도 이어지다 첼로가 역시 단조롭지만 풍성한 음색으로 피아노를 도와 2중주를 진행한다. 그렇게 10분이 흘러간다. 막스 리히터의 '잠'이 도대체 어떤 음악이길래? 궁금하다면 이 트랙으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실은 'Dream 13'이 좀 더 유명한데 내 취향은 3이다.
그럼 난 이 '잠' 앨범의 원초적 기능을 존중해서 그를 실제로 재생하며 자는 것을 시도한 적이 있을까.
있다. 실은 해본 적이 있다.
결과는?
트랙 초반에 잠은 든 것 같다. 하지만 선잠이었고 한 시간 정도 머리를 울리는 음악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아 결국 음악을 끄고 그제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나에겐 잠을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트랙의 멜로디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고 매우 불편했다. 정신이 사나웠다.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더라는 그런 시시한 결말인 것이다. 하지만 해보긴 했다. 미토콘드리아 같은 작은 무용담이 만들어졌다.
원래도 힘들었지만 나이를 먹으면 더 힘들어지는 것이 어쨌든 뭐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당시 나는 어쨌든 뭐라도 해봤고, 오늘도 난 어쨌든 이것을 해보는 중이다. 이 뉴스레터가 어떻게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난 오늘 했다. 첫 번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