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1988)의 마지막 장면은 유명하다. 토토(자크 페랭)는 옛 친구인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 릴을 받아와 작은 시사실에서 틀어달라고 한다. 어떤 영상일지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영사기에 걸린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토토가 어렸을 때, 신부님이 종을 치며 키스 장면만 나오면 검열했던 바로 그 장면들만 모아 놓은 키스 푸티지 영상이 감독으로 성공한 어른 토토에게 영사된다. 토토는 가위로 잘린 그 키스 프레임을 갖고 싶어 했지만 알프레도는 매번 거절했다. 훗날 알프레도는 고향을 떠나는 토토에게 말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그런 토토에게 그는 오랜 시간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영상에 집중하는 토토의 얼굴을 보며, 그것이 관객인 ‘나’의 표정이기도 함을 우리는 깨닫는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서정적인 음악(Cinema Paradiso)이 흐르고 스크린에는 낡은 키스 장면들이 거칠게 지나간다. 자크 페랭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을 보며, 관객은 감동을 받고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이 마지막 장면의 감동은 너무나 압도적이라 어린 나에겐 알지 못할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사춘기였나.) 그러나 직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분위기가 조금 반전된다. 음악은 경쾌하게 바뀌고(Toto and Alfredo (ver.2)), 스크린에서는 과거의 알프레도와 어린 토토를 다시 보여주는데 난 그 엔딩 크레딧에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행’이라는 감정이 들었더랬다.
여기서 토토는 영화를 극장(시사실)에서 혼자 본다.
존 카펜터의 <매드니스>(1994)를 좋아한다. 손에 꼽는 공포영화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어마어마하게 무서웠다는 기억이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본 <매드니스>는 그냥 B급 호러 무비였다. 어설프고 그래서 가끔은 웃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시무시한 코즈믹 호러 무드는 변함이 없었다.
여러 장면 중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소설가 존 트랜트(샘 닐)가 세상이 망한 가운데 혼자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는 장면이다. 그 영화는 바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매드니스>였다. 샘 닐은 팝콘을 품에 안고 미친 듯이 웃어댄다. 거기서 영화는 툭 끝나버린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샘 닐이다. 그는 정말 미친 인간 같았다. 샘 닐을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1993)에서 처음 봤는데 사람들이 샘 닐은 호러 킹이라는 것이다. 아니 저 인자하고 기계와 안 친한 매력적인 공룡 박사님이 왜 호러 킹이라는 거지? 풉. 했다가 1년 만에 그가 왜 호러 킹인지 바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여기서 존 트랜트도 영화를 극장에서 혼자 본다. 그런데 내 기억에 의하면 나도 <매드니스>를 서울 중앙극장에서 거의 혼자 본 거 같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거의 그랬던 건 확실하다. 한두 명 정도 더 있었을까.
최근 디즈니+를 뒤적뒤적하다가 샘 멘데스 감독의 <빛의 시네마>(2022)를 발견했다. 샘 멘데스에게 이런 영화도 있었던가, 하다가 원제를 보니 ‘Empire of Light 빛의 제국’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영국 해안의 아름다운 극장 엠파이어에 대한 이야기. 극장 매니저인 힐러리(올리비아 콜맨)는 오랜 시간 극장에서 일하며 영화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여러 가지 사건이 생기고, 마음이 힘들었던 그녀는 문득 늦은 시간 극장에 돌아온다. 그리고 퇴근하는 영사기사 노먼(토비 존스)에게 다짜고짜 영화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노먼은 당황하지만, 어떤 영화요, 라고 질문하고 힐러리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아무거나 보여달라고 한다. 옷을 다 입고 퇴근을 하려던 노먼은 다시 영사실로 돌아가 외투를 벗고 힐러리에게, 그녀만을 위한 영화를 상영한다. 할 애슈비의 <찬스 Being There>(1979)다.
영화를 보며 위로받는 힐러리의 모습도 뭉클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직장 동료에게 내준 노먼에게 감동했다. 필름으로 영화 한 편을 영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힐러리는 엠파이어 극장에서 <찬스>를 혼자 본다.
나에게도 극장에서 영화를 혼자 본 경험이 있었을까? 앞에 썼듯 확실하지 않지만 중앙극장에서의 <매드니스>가 ‘거의’ 근접했었다. 정말 확실한 건 작년 겨울, 파주의 어떤 극장에서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2025)을 봤을 때였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대략 20여 년 전 이야기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상암에 자리잡기 전,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 임대해 있었을 때, 지하에 작은 극장 두 개가 있었다. 정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난 김지운 감독의 단편 <사랑의 힘>(2003)이 필름으로 들어왔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 영화에 나만 집중한 이유는 송강호가 출연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난 당시 ‘언오피셜 송강호 팬 사이트’를 운영하던 중이었다. 그의 영화를 모두 섭렵하는 건 당연했고, 그의 자료를 부지런히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사랑의 힘>만큼은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DVD나 비디오 출시도 되어있지 않았고, 필름으로만 존재했다. 그런데 그 필름이 자료원에 들어왔다. 내가 볼 수 있을까?
당시 조금 친하던 영사기사 K에게 부탁을 해봤다. 거절하겠지? 그는 의외로 쉽게 승낙했다. 언제쯤 내가 준비를 해놓을 테니 연락하면 바로 내려와라. 무슨 스파이 지령처럼 말했다. 이렇게 쉽게 허락해 준다고? 하며 난 알겠다고, 고맙다고 했다. K가 말한 언제쯤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 전화가 울렸고, 영사실이었다. 준비됐으니 내려오라는 말이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렸다.
느려터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두 개의 상영관 중 작은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객석에는 나 혼자 앉아 있었고, 뒤를 돌아보니 영사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K가 보였다. 손을 들어 인사를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영사실에서 뿜어지는 그 빛에는 왜 그렇게 먼지가 많이 날아다닐까. 난 그게 늘 궁금했다. 부유하는 먼지를 뚫고 빛이 스크린에 닿았다. 그렇게 김지운 감독, 송강호, 문소리 주연의 짧은 단편 <사랑의 힘>을 볼 수 있었다. 영화는 별거 없었다. 문소리는 휠체어에 앉아있고, 송강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인데 그 둘이 외나무다리를 건너간다는 이야기다. 김지운이 스타 배우 둘을 데리고 그냥 동아리 영화를 찍은 거 같았다. 하지만 난 그 순간, 거의 아무도 보지 못한 영화를 혼자 극장에 앉아 본 것이다. 영화 자체보다 영화 관람을 둘러싼 경험에 매료됐다. 그래서 그 영화는 덩달아 내 기억에 오래 남게 된다. 작은 극장의 눅눅한 공기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났고 난 K에게 인사한 후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9분의 러닝타임 동안 일어난 일이다.
K는 이후 회사에서 약간의 문제를 일으켰다. 그게 원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안 있어 퇴사했다. 퇴사 후 K의 평판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K는 <사랑의 힘>을 영사해 준 영사기사로 기억됐다. 힐러리를 위해 기꺼이 영화를 상영한 노먼을 볼 때, 난 즉각적으로 20여 년 전, 서초동 시절의 동료 K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직장 동료의 상갓집에서 정말 오랜만에 K를 만났다. 얼굴이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아는 그 K가 맞나 할 정도로. 그와 악수를 나눴다.
나만을 위해 영화를 상영해 준 영사기사 K는 나의 안부를 물었다. 나도 그의 안부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