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관심 속에 나고야 아시안 게임이 끝났다. 그러고 보니 끝난 지도 꽤 됐다. 나의 무관심이 이 정도다. 그러나 자신의 종목에서 아시아 1위를 하기 위해 노력한 선수 모두를 존경한다. 진심이다.
MBC에서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특이한 인터뷰들을 묶어 내보냈다. 패한 선수의 인터뷰들이었다. 어떤 선수는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8위를 했다고 울먹이고, 어떤 선수는 특정 일본 선수에게 다섯 번 져서 이번에는 꼭 이기고 싶었는데 또 졌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 영상에 눈이 한참 갔다. 우리는 승리한 자에게 눈길을 주기에도 바쁘다. 카메라는 그들을 찾고 예능은 그들을 섭외한다. 하지만 패자는 조용히 돌아와 훈련할 것이다. 그 훈련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 아무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순간의 인터뷰. 그래서 그들의 인터뷰에 마음이 갔던 것 같다. 다음에는 메달권에 들길, 그리고 일곱 번째 대결에서는 그 일본 선수를 꼭 이기길 바란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패자의 이야기보다 승자의 이야기를 안다. 그중 좋아하는 것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의 이야기다.
1994년 10월 16일.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폐막일.
육상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마지막 경기는 남자 1600m 계주(400m x 4명) 결승이었다. 아시아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한 종목이었고, 그래서 일본은 1600m에서 화려하게 금메달을 걸고 직후 폐막식으로 건너가는 피날레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 1600m 계주 결승에서 한국은 1번 단거리 이언학, 2번 400m 손주일, 3번 800m 이진일, 4번 1500m 김순형이 뛰게 된다.
육상 선수층이 얇은 한국은 1600m 계주에 중거리 선수인 이진일과 김순형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400m는 전력에 가까운 속도로 한 바퀴를 버텨야 해서 젖산이 빠르게 쌓이고, 몸의 부담도 극심해지는 종목이다. 스피드가 최대 관건이 아닌 중거리 선수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아니다. 반대로 100미터 선수(이언학)에게도 400m는 전혀 다른 게임이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언학은 오래 달리는 훈련을 했고, 이진일과 김순형은 더 빨리 달리는 훈련을 했다.
결승.
한국은 5번 레인에 선다.
일본은 8번 레인.
계주에서 보통 에이스를 스타터(1번 주자)나 앵커(4번 주자)로 내보낸다. 하지만 그날 결승, 한국 코치진은 에이스를 2번과 3번으로 배치하고 그 라운드에서 최대한 격차를 벌리는 작전을 짠다. 당시 코치진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은 워낙 철옹성이었으므로, 초반에 아예 승부를 보거나 상대를 기술적으로 흔드는 작전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3번 주자였던, 800m 금메달리스트 이진일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구간에서 상대 국가의 숨통을 끊어놔야 했다는 말을 했다. 최대한의 거리를 만든 후, 그 다음은 앵커의 몫이었던 것이다.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마지막 경기.
남자 1600m 계주 결승.
온 유어 마크스.
총이 울리고, 선수들이 뛰어 나간다. 한국은 단거리 선수 이언학이 뛰어 나갔다. 스타터는 자기 레인을 그대로 달려야 한다. 최선을 다한 이언학은 4위로 들어온다. 2번 주자 손주일. 한국 최강 400m 주자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손주일은 자기 레인으로 첫 곡선 구간을 달린다. 직후 브레이크라인을 지나 안쪽으로 파고든다.
일본의 2번 주자 이나가키가 압도적으로 1위인 가운데, 오픈 레인에서 한국의 손주일이 2위로 자리 잡는다. 일본과는 상당한 거리. 그 위치가 오래 지속된다. 그런데 손주일이 마지막 100m를 남기고 미친 스퍼트를 하기 시작한다. 먼 거리에 있던 이나가키가 저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따라잡힌다. 이나가키는 히로시마 400m 4위. 손주일은 2위. 3번 주자에게 바통 넘길 순간을 얼마 안 남기고 손주일은 직선주로를 달린다. 이나가키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1m, 50cm… 순간 이나가키를 따라잡는다. 손주일은 앞으로 치고 나갔고, 그때 이나가키는 바통을 떨어뜨린다. 일본 최대 실책이 나온 가운데 3번 주자가 바통을 받는다.
이진일. 800m 금메달리스트.
손주일의 스피드 덕에 이진일이 1위로 치고 나간다. 한국은 여기서 뒤와의 격차를 최대한 벌려야 했다.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구간에서 상대의 숨통을 끊어놔야 했다. 이진일은 800m 선수였지만, 히로시마에서 금메달을 딴 아시아 최고의 선수다. 2위와의 격차를 크게 벌린 채 그 역할을 다 하며 전력질주한다. 2위와 거의 좁혀지지 않은 채, 한 바퀴를 돈다. 4번 주자, 앵커 김순형에게 바통을 전달한다.
이제 김순형이 마지막 바퀴를 뛰기 시작한다.
김순형이 1위로 뛰어 나간 후 레이스 절반을 큰 차이로 앞서 달린다. 그러다 200m쯤. 김순형은 카타르 선수에게 따라잡히기 시작한다. 카타르는 무섭게 뛰어왔다. 심지어 3위였던 태국 선수도 거의 김순형에게 근접한다. 캐스터의 아, 따라잡히는군요, 하는 탄식. 카타르 선수는 결국 김순형을 추월한다. 그리고 멀어진다. 태국도 김순형 뒤에 바짝 붙기 시작한다.
직선주로.
결승선을 80m 정도 남긴 지점. 1500m 선수로 지구력이 좋았던 김순형은 막판 스퍼트를 하기 시작한다. 중간 지점에서 자신을 따라잡고 1위로 달리던 카타르 선수를 다시 따라잡는다. 태국도 3위권에서 스퍼트. 결승선이 50m 남았을 때. 김순형은 카타르에 근접한다. 그 뒤 태국도 카타르에 근접한다. 결승선까지 30m, 10m… 이때 김순형은 카타르를 잡는다. 태국도 카타르를 잡는다. 한국과 태국의 마지막 질주. 태국은 한국을 잡지 못한다.
한국 1위.
3분 10초 19. 한국 신기록.
이 경기 시상식에는 한국이 금메달, 태국이 은메달, 카타르가 동메달이었다. 일본은 단상에 오르지 못했다. 시상식 직후 폐막식 대열이 들어왔다.
한국의 1600m 계주,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1994년 히로시마가 최초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일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이 극적으로 은메달을 딴 것이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인천에서 일본은 매우 큰 격차로 1위로 들어왔다. 한국은 3위 사우디아라비아와 접전 끝에 막판 역전했다.
사실 이 결승을 당시에는 몰랐다. 알게 된 경위는 조금 엉뚱하다. 언젠가 한국의 깨지지 않는 장기 미경신 기록을 찾은 적이 있다.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4개월 전.
1994년 6월 17일.
손주일은 잠실에서 열린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400m를 45초 37로 들어온다. 이 기록은 32년째 깨지지 않는 한국 육상 최장 기간 미경신 기록이 된다.
이진일도 같은 날 800m를 1분 44초 14로 들어온다. 역시 32년째 깨지지 않는 한국 기록이다. 그리고 당시 세계 7위의 기록이기도 했다. 한국 육상 선수가 세계 수준의 기록을 가진 매우 드문 사례였다.
1994년 6월 17일, 두 선수는 같은 날, 같은 대회, 각자의 종목에서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앵커 김순형도 만만치 않았다. 김순형이 1993년에 달린 1500m는 32년간 한국 기록이었다. 그게 지난해 2025년, 이재웅에 의해 겨우 경신됐다. 32년 만의 일이다. 이재웅은 김순형의 기록을 0.05초 단축하며 스스로 한국 신기록을 가져갔다. 그 후 이재웅은 자신의 기록을 더 단축하며 명실상부 1500m 최강자가 된다.
결국 32년 이상 한국 기록을 지킨 세 명의 선수가 히로시마 1600m를 뛰었다. 그 계주는 그 전이나 후로 다시 없는 순간이 됐다.
에필로그.
손주일은 이후 오랫동안 400m의 독보적 1인자로 자리하다 지도자가 된다. 이진일은 2년 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뛸 계획이었으나 감기약 3알로 도핑에 걸려 2년간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그는 재기해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800m에서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건다. 이언학과 김순형도 주종목 최강자에 머물다 모두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쿠키.
1994년 6월 17일, 같은 대회. 이영숙 선수는 100m를 11초 49에 뛴다. 그 기록도 32년간 깨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