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700m 이하 전문 산악인의 고충
2022년 10월, 운길산 정상(610m)에 처음 올랐다. 집 근처 산인데 7부 높이의 수종사 말고 정상까지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운길산 정상까지의 길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정상에 올라 보니 힘듦이 무색하게 초현실적으로 깔끔한 데크가 있었고 거기엔 아주 많은 사람이 볕을 즐기고 있었다. 오를 때는 거의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거기엔 왜 그렇게 많은지 신비로울 정도로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
나에겐 ‘등산할 때 올라가는 길로 내려오기 싫어하는 병’이 있다. 그래서 정상에서는 늘 다른 내려가는 길이 없나를 찾는다. 운길산 정상의 데크에도 반대편에 길이 나 있었고 그쪽으로 6km를 가면 예봉산이라고 했다. 지금 예봉산을 찍고 팔당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안 되겠지. 10월의 오후 네 시 반이었다. 해는 이미 기우는 중이었고 내 발은 일단 반대편 길로 향했다. 가는 데까지 가다가 대강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겠지, 능선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그러나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내려가는 길은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끝없는 능선이 이어지던 중 꽤 높아 보이는 봉우리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았고, 올라갈 엄두는 안 나는데 정말로 이제는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겁이 덜컥 났다. 산은 해가 더 빨리 진다는데 결단을 내려야 했고 없는 길이지만 왼쪽으로 내려가면 세정사(절) 어딘가, 나에게 익숙한 동네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겁이 났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운길산 정상부터 길을 걷는 내내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길이 없는 길로 내려갔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길을 잃지는 않는다는 어떤 팁을 떠올리며 물길을 걷다 신발이 죄다 젖었다. 10월의 튼튼한 덩굴을 헤치고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내며 빠져나가길 한참, 그러다 겨우 사람이 지나다니며 만들어놨을 법한 길을 찾았다. 그 종착지는 폐장한 사설 거미 박물관이었다. 망한 테마파크에 대한 이상한 호감이 있는데 그날은 그걸 즐기기에 지나치게 스산했고, 아무도 없는 거미 박물관의 철문을 끽 열고 빠져나오자마자 길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안도의 숨을 쉬고 뒤돌아보니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숲은 검게 변해 있었다. 이날의 일을 난 ‘검은 숲’이라는 제목으로 『여름 맥주 영화』 원고로 썼지만, 최종 탈락했다.
2024년 2월,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어느 날에도 난 운길산 정상에 올랐다. 그날은 2022년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늦겨울의 그곳은 아직 눈이 남아있었고, 정상 데크에는 2년 전 가을과 달리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는 건 없는 대로 분위기 묘하더라. 이번에도 반대편 데크 출구로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몇 개 내려갔다. 병이다. 그러다 멈췄다. 뒤돌아보니 사람은 역시 없고, 겨울바람 소리가 휘잉 울렸다. 저 멀리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보였다. 다시 한번 겨울바람이 불어와 내 뺨을 쳤다. 정신이 들었다. 겨울의 해는 더 짧겠지. 이러다 해라도 진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