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0일로 분해된 하루
하루는 1,440분이다. 이걸 1,440일로 늘리고 매일 각기 다른 분(minute)을 딱 한 번 무작위 호출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어떤 날은 오전 7시 35분을 호출하고 어떤 날은 오후 10시 1분을 호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1,440일, 거의 4년(3년 345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1,440일로 확장된 나의 하루가 모든 분으로 호출된다. 호출의 방법은 뭐로 할까. 사진이 어떨까. 오, 그러면 1,440일 후에는 각기 다른 분에 찍힌 사진 1,440장이 모이게 될 것이고 그건 진짜 나의 일상이고 하루이지 않을까? 재미있겠다!
라고, 미뉴시(minutiae) 앱을 만든 마틴 아돌프슨(Martin Adolfsson)과 다니엘 윌슨(Daniel J. Wilson)이 생각했다. 그들은 2017년 미뉴시 앱을 발표하면서 사용자를 위한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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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40일 동안 하루를 구성하는 ‘분’ 중 하나를 무작위로 전 세계 가입자에게 동시 호출한다. 2. 사용자는 미뉴시 앱이 호출하는 순간부터 1분 동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론 오늘의 호출 시간을 미리 알 수 없다. 3. 1분이 지나면 사진 찍는 기능이 막힌다. 오늘은 놓친 거고 내일의 호출을 기다려야 한다. 4. 사진 찍는 데 성공한다면 나와 같은 시간에 찍은 다른 사용자(무작위로 골라진 단 한 명)의 사진을 보여준다. 5. 내가 찍은 사진은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나도 크게 볼 수 없다. 6. 1,440일이 지나면 클라우드에 전송된 나의 사진을 비로소 내려받을 수 있다.
미뉴시는 안티 소셜 미디어를 내걸고 만들어진 앱이다. 팔로우, 팔로워 개념도 없고, 내가 자랑하고 싶은 순간의 사진을 남길 수도 없다. 매일 강제된 시간에 호출이 울리면 제한 시간 1분 이내에 주위의 것 아무거나 찍어야 한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호출이 울릴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순간 찍어야 하는 것이다. 거참 이상한데 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난 2021년 미뉴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전 1,440번째 마지막 호출을 받았다. 난 1,440번 중 966번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잠자는 시간은 호출이 와도 찍을 수 없으니 이만하면 선방한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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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440장 중 966장 성공. 검은색이 놓친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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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호출이 온 직후, 비로소 난 내가 찍은 966개의 사진을 ‘분’의 순서대로 볼 수 있었다. 0시 0분부터 11시 59분까지. 하루처럼 흘러가지만 실은 4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이 사진이 나의 일상을 말해줄 수 있을까. 결론은,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 나의 일상은 흥미진진할까. 그럴 리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아침 6시 반 경 잠에서 깨고, 출근 준비하는 분주한 시간에는 대부분 호출을 놓치며, 그다음은 아파트 주차장, 양수역까지 운전하는 순간, 그리고 양수역. 직후 7시 40분부터 9시까지 통근 전철 안에 있는 결과가 너무도 예외성 없는 일상의 증명이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루틴인데 그게 나의 생활이긴 하다. 그걸 이렇게 확인하고 있자니 내가 투덕투덕 그리고 묵묵히 또 열심히 살아왔다는 게 느껴져 살짝 울컥했다면 그건 내가 F이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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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는 오전 사무실 풍경이 매우 많고, 밤에는 침대에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내 기억으로도 가장 많이 호출을 받은 공간은 사무실과 내 침대 위다. 회사에 앉아 있는데 왜 그리 울려대던지, 책상 위 여기저기를 찍다 지겨워서 가끔은 폰은 들고 테라스로 나가 DMC 전경을 찍기도 했다. 966개의 사진은 그런 나의 기억을 증명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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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는 달리 오후에는 사무실의 비중이 여전히 압도적인 가운데 조금 줄어든다. 밖 어딘가를 운전하고 돌아다닌다던가, 집도 회사도 아닌 다른 곳의 사진이 좀 보이던데, 출장을 갔거나, 여행을 갔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거나. 그래도 이런 순간들이 조금씩 보이고는 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라 일상 속 예외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한데 그래도 내 일상의 예외들이 오후 시간에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늦은 밤이 되면 난 여지없이 침대로 돌아왔다. 클럽 같은 곳에서 신나죽겠는 그런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처럼 침대 위에서 사방팔방 찍은 숏이 많다. 그렇게 뻔한 나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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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뉴시는 나에게 로테이션 한 번 더 돌래? 라고, 물어보는 중이다. 예스라고 답할 가능성은 작다. 또 미뉴시는 나에게 고품질의 사진을 내려받으라고 말하는 중이지만 난 아직 내려받지 않았다. 저 사진들을 내려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은 순간들. 그저 뭉쳐지면 나의 일상을 말해주는 966장의 사진일 뿐인 것. 지금처럼 앱을 통해 확인만 할 수 있어도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게 일상이지 않을까. 순간순간이 고품질일 필요는 없고 그걸 뭉친 여러 순간이 일상 혹은 내가 된다는 것. 그래서 난 아마도 영원히 미뉴시가 제공하는 고품질 사진을 다운로드 받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앱에 들어가 스와이프하면서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내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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