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회사까지 내비를 찍으면 50km. 대부분은 전철(경의중앙선을 지하철로 부를 수는 없다. 그건 물리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셈이다)로 통근하지만, 가끔 자차로 출근하곤 한다. 이를테면 파주보존센터에서 오전 회의가 있는 날이면 차를 몰고 파주에서 일을 보고 다시 상암 사무실로 운전해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 날은 내비에 편도 80km가 무심하게 찍힌다. 그리고 야근 하기에는 의외로 자차가 더 낫다. 회사에서 밤 9시 넘어 나와 수색역까지 걷고, 전철에 내 몸을 싣고 꾸벅꾸벅 졸 수는 있겠지만, 막히지 않는 늦은 밤의 내부 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를 달리면서 한 시간 안쪽으로 도착하는 게 되려 속 편하다. 그렇게 가끔, 16년 된 나의 쏘울을 몰고 회사를 갈 때가 있다.
상암 사무실로 바로 출근할 때는 내부 순환로를 타다 거의 도착해서 연희 램프에서 빠진다. 내려가면 바로 모래내 지하차도가 나오고, 거기가 좀 복잡한데, 일단 통과하면 예전 T맵은 중동초교를 끼고 우회전해서 큰길로 쭉 가는 걸 제안했지만 중동초교까지 가는 길목이 꽤 막혀서 어쩔까 하다가, 중간에 마을 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가좌역 앞의 성사중학교 쪽 골목길을 발굴했다. 그 골목이 끝나는 앞에 가좌역 도로가 있고, 난 비보호를 받고 좌회전해야 한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T맵이 알려주는 경로
성사중학교로 꺾어 가좌역으로 가는 경로
난 가좌역을 마주 보며 멈춰있다. 그러다 정면의 차량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온다. 슬금슬금 좌회전하는데 바로 건널목이 있고, 건널목 역시 파란불인 상태다. 사람들이 모두 건너가기를 기다리며 멈춘다. 건널목 위 사람이 모두 사라진, 파란불이 꺼지기 직전의 짧은 순간 좌회전하는 모든 차량은 나를 포함 액셀을 밟고 전진한다. 그리고 바로 첫 번째 신호등을 맞이한다. 보통 그 신호등은 막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는 찰나가 된다. 바로 통과하면서 좀 더 가속한다. 함께 비보호를 타고 좌회전한 차들이 서로 경쟁하듯 달리기 시작한다. 가좌역을 우측에 둔 그 길은 편도 2차선 도로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고개를 몇 번 지나지만 기본적으로 직선 주로다. 제한 속도는 50km. 두 번째, 세 번째 신호등까지는 문제없다. 1차선에서 아파트 쪽으로 좌회전하려는 차량을 피해, 혹은 2차선에서 멈춰있는 버스를 피해 브레이크를 밟을 일 없도록 요리조리 차선을 바꾸며 달린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신호등이 나오고 두 번째 언덕 위의 여섯 번째 신호등이 나오는데, 늘 거기가 첫 번째 빨간색으로 바뀌는 신호등이 된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아뿔싸 게다가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리듬이 모두 깨진다. 이후의 신호등은 엉망이 된다.
자, 50km의 그 도로를 조금만 과속해서 65km로 달려보자.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나. 다시 첫 번째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온다. 1차선과 2차선을 넘나들며 질주하며 두 번째, 세 번째 신호등을 차례로 통과하면 비로소 여섯 번째 신호등이 앞에 보인다. 아직 파란불이다. 부앙 액셀을 밟아 바로 통과한다. 직후 노란불이 들어온다. 내 뒤 차가 멈춘 것이 백미러로 보인다. 거길 통과하면 7~8번째 신호등도 바로 통과할 수 있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 아홉 번째 신호등에서는 반드시 걸리게 되어 있다. 위치는 DMC역. 쉬어가는 곳. 이런 상태로 달려 도착했을 때 여기에서 파란불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시 파란불. DMC역에 서 있는 셔틀버스와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로 복잡한 도로를 요리조리 피한 다음 다시 달리면 열 번째와 열한 번째를 그냥 통과하게 되고, 운이 좋으면 열두 번째 신호등도 바로 통과한다. 직후 마지막, 열세 번째 신호등에서는 좌회전을 받아야 하므로 1차선 좌회전 차로로 진입하고 여기서도 운이 좋으면 바로 좌회전 신호를 받아 꺾을 수 있다. 그렇게 도착한 지금의 위치는 MBC. 다 온 거다. 가좌역 앞에서 비보호를 받고 약간의 과속과 함께 대한민국의 신호등 체계를 최고 효율로 통과해 MBC에서 좌회전을 타면, 내비 시간이 2분 줄어들어 있다. 2분이나 줄었구나. 아 뿌듯하다.
그리고 큰 블록을 빙 돌면 바로 회사다. 회사 건물로 들어와 주차한다. 오늘도 운이 좋았네. 2분 일찍 도착했네. 좋은 드라이브였네. 그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려 출근 세콤을 찍으면 2분 일찍 도착한 회사가 뭐가 좋은 건지 다소 헷갈리며 나는 내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책상 위 조명 스위치를 올린다. PC 전원을 켜고 무릎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