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의 노원 맥주 축제가 열렸다
난 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으니 못 갔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말이다. 초여름 축제가 올해부터 늦여름 저녁으로 바뀌었고, 또 다른 정취 속에서 수많은 브루어리 부스를 기웃거리며 맥주를 선택하고, 그걸 마시며 뜨겁고 에너지 넘치는 대낮에 야외 공원에서 술에 취해 몽롱한 기분을 즐기는 그것을 올해는 일단 넘긴 것이다. 그래서 많이 아쉬우냐, 혹은 1년 후가 또 언제 오지 싶은 것인가. 그게 또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해보려 한다.
맥주를 여전히 좋아한다(책에도 쓴 문장이다). 경증 지방간 외에는 몸에 이렇다 할 이상 소견 없다는 나름 괜찮은 검진 결과가 나온 중년, 그런 만큼 ‘지방간’은 평생 따라붙어 (정말 첫 건강검진부터 지방간이었다) 의사가 대뜸, 술 좋아해요? 라고 물어서 그걸 이제는 그만두라는 건가, 싶은 반복되는 여러 결과가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맥주를 손에서 못 놓는다는 말이다.
실제로 내가 그것을 실행하건 말건 상관없이 맥주는 나에게 하나의 아이콘이다. 밤에 느긋하게 TV를 켜고 영화를 보며 맥주 한잔을 한다는 것, 출장지에서 근처 좋은 펍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일을 마치고 그곳에 가 지역 맥주를 마시는 것, 일이 끝난 후 친구와 약속을 잡아 을지로에 새로 열었다는 펍에서 신선한 맥주를 즐기는 것. 북적거리는 맥주 축제에서 온갖 브루어리의 부스들을 보며 고민에 빠지는 것, 이런 상상은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내가 즐겁다고 느끼는 이상적 상황 안에 ‘맥주’는 많은 도움을 준다. 이상한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는 것,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회사를 주말에 나와 맥주 한두 캔 마시며 밀린 일을 해치우는 것, 조금 낭만적이며 가끔이라면 즐거운 사건 같지 않나?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소주를 몰래 마시며 밀린 일을 해치우는 것. 이건 또 행복하지 않다. 역시 맥주다. 문장에 맥주가 들어가면 사무실 창밖에는 찬란한 햇빛이 있을 것 같고, 소주가 들어가면 흐린 날씨나 밤일 것 같다. 이렇게 쓰다 보니 주말에 회사 나온 게 뭐가 즐겁다고 이런 예를 드는지, 내가 그냥 미친 건가.
그러나 정작 현실로 발현되면 생각과 달라진다. 맥주를 마시며 일하면 금방 몽롱해지고 집중이 안 돼서 힘들어진다. 당연하지 않은가. 머리로 굴리는 이미지 낭만과는 상관없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맥주 축제도 그와 같다. 축제는 그 장소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올해는 어떤 브루어리들이 왔을까, 부스 간판을 쫙 훑으며 여기, 여기, 여기... 그래 여기! 아니 여기도? 하는 그 쾌감. 그리고 그 브루어리에서 어떤 맥주들을 내놨을까. 축제용 새로운 맥주도 있을까! 그런 기대. 두근두근한다. 수십 곳의 브루어리에서 적어도 5가지 넘는 맥주를 선보이고 있으니 100종이 훨씬 넘는 맥주가 그곳에 넘실대고 있다는 것이다. 대략 150종? 우와 150가지의 맥주? 너무 좋군. 하는 찰나, 그중 내가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딱 3잔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박수가 안정되고 현실이 엄습한다. 노원 맥주 축제에는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거의 500cc에 가까운 맥주를 따라준다. 낮은 도수의 아메리칸 애드정트 라거(보리와 함께 쌀과 옥수수 같은 보조 원료가 포함된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맥주)가 그곳에 있을 리 없다. 어느 정도 고도수 맥주가 대부분이고 그렇게 마시면 아무리 맛있는 맥주라 하더라도 세잔이 나로선 최대치가 된다. 억지로 마시면 더 마실 수는 있겠지만 의미가 없다. 수십 년간 피로에 전 지방간은 날 금방 취하게 한다.
뷔페에 가더라도 초밥 한 점, 육회 한 점, 스테이크 한 점. 내가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은 그래도 조금씩 입에 넣어볼 수 있다. 그리고 맛있었던 것들을 모아 최후의 접시에 한 번 더 담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술은 그렇지 않다. 음식보다 한계가 명확하다. (다시 한번) 150잔 중 3잔이라니. 축제에 나온 맥주 중 98%를 마실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작년부터 그런 생각이 들며 축제의 맥주들은 대부분이 허상인 것인가, 그런 허탈함을 맛봤다. 2%만 마실 수 있는 게 나에게 왜 축제가 되는 거지. 그럼 텀플러 말고 샘플러 잔으로 여러 맥주를 마시면 되지 않냐, 싶을 텐데 일단 그런 축제에는 샘플러 단위로 판매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난 샘플러로 서빙되는 술은 어떤 체험을 위한 것이지 술을 마시는 행위라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씩 따라주는 다양한 것들을 맛보며 다름을 분석하는 그 행위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트에서 시식하는 것보다 체계적이고 고급스러운 정도의 체험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래서 펍에 가서도 다시는 여기 못 올 것 같은 로컬 펍이 아니라면, 샘플러를 잘 시키지 않는다. 한잔이라고 정의된 그 잔에 하나의 맥주가 서빙되어 그걸 끝까지 마시는 것이 더 좋고 더 행복하다.
그러다 보니 노원 맥주 축제처럼 규모가 큰 축제일수록 나에겐 대부분이 신기루인 것이다. 그 신기루를 걷어내고 현실로 만드는 2%의 맥주. 이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인가. 그런 생각이 드니 이번 축제를 가지 않은 게 그렇게까지 아쉽지는 않더라, 그런 말이다. 에휴, 별소리를. 그럼, 다음부터는 맥주 축제 다 안 갈래? 라고 묻는다면, 또 그건 아니다. 여전히 나에게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맥주는 유효하고, 그 이상향을 현실로 발현하는 행위는 할 만하다. 그리고 축제에서 2%의 맥주만 먹는다고 해서 그 왁자한 축제 분위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들 조금씩 흐트러진 사람들이 돗자리 깔고 앉아서 술과 음식을 엄청나게 먹어대는 그런 분위기(실은 이것도 머리가 만들어내는 이상적 상황일 수 있다)는 재미있다.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내년 노원 맥주 축제에는 별일이 없으면 갈 것 같지만, 또 못 가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 아쉽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쓰고 보니 하나 마나 한 말을 하며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