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다”라고 말하려면 몇 분까지 자는 게 허용될까?
좀 억울하지 않은가. 1분 깜빡 졸았는데 “넌 그 영화를 자느라 놓쳤으니까 어디 가서 봤다고 하지 마. 넌 그 영화 안 본 거야.” 이런 소리를 들으면. 그렇다고 신나게 꾸벅꾸벅 한 시간을 자버린 영화를 봤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극장에서 너무 잘 잔다. 영화를 보다가 후반에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름의 루틴이 있다. 극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 난 이미 졸리다. 어둠과 함께 분비된다는 멜라토닌이 너무 왕성한 건지, 아무튼 영화의 오프닝크레딧이 지나가면 이미 눈이 무거워지며 난 점점 불안해진다. 이거 또 앞부분을 자느라 못 볼 거 같은데, 집중하자. 영화에 집중하라고. 그리고 잠을 이겨내! 그러나 헛된 일이란 걸 안다. 영화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잠을 쫓을 수 없다는 걸 나의 세월이 증명한다. 깜빡깜빡 불이 나갔다 들어 왔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영화가 깜빡깜빡 간헐적으로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떴다를 반복하는 순간, 영화 시작 후 10분 정도에 일어나는 루틴이다.
그러다 프로포폴이 들어오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다 내가 좀 잔 건가, 라는 자책을 하며 조용히 눈을 뜬다. 눈앞의 영화는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잠들기 전 최후의 장면이 뭐였는지 기억하려 애쓴다. 도대체 얼마를 잔 거지. 슬쩍 시계를 본다. 10분 정도 자고 일어난 거면 그래도 금방 따라잡는다. 20분 정도 자고 일어나도 이야기를 따라잡는 데는 문제 없다. 다만 그 20분이라는 긴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으니 좀 불안하긴 한 것이다. 30분 정도를 자고 일어나게 되면, 내가 이 영화를 계속 보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며 죄책감에 빠지고 그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버리기도 한다. 다행히(?) 그렇게 초반에 자고 나면 그 이후는 멀쩡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은 두 번 졸지 않는다. (“거...참 다행이시네요,” 라는 빈정거리는 말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다) 예외가 있었으니 아핏차퐁 위라세타쿨의 <메모리아>(2021)는 초반에 자고 중반에 한 번 더 잤다. 덕분에 결말쯤 낯선 롱테이크는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정반대의 예외도 있는데 잉마르 베리만의 <겨울빛>(1963)은 동숭아트센터 극장 의자에 앉는 순간 졸음이 몰려왔으나 영화가 시작되고 점점 정신이 드는 영화였다. 그 바짝 당기는 인물 간 감정의 긴장감이 날 그렇게 만든 거 같은데, 아주 예외적인 현상으로 일평생 단 한 번의 경험이다.
얼마 전 월터 살레스 감독의 <아임 스틸 히어(계엄의 기억)>(2024)를 D를 졸라 너무도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봤다. 월터 살레스의 <중앙역>(1998)도 좋아하고, <아임 스틸 히어>에 대한 평도 다 좋고, 게다가 얼마 전까지 우리는 계엄령의 악몽 속에 살았던 사람들 아닌가.
그러나 예외 없이 난 루틴을 따랐다. 옵션 시간은 20분. 이야기를 따라잡는 데는 역시나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영화를 본 건가 안 본 건가를 헷갈리게 만드는 정도의 수면. D는 내가 자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라고 했다. 1970년대 브라질 계엄으로 인해 중산층 가족이 겪는 일, 대부분은 본 것 같고 영화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알 것 같은데, 그리고 심지어 재미있었고 좋은 영화라는 생각도 드는데, 결정적으로 난 이 영화를 본 건지 안 본 건지를 잘 모르겠고 그래서 재미있다는 말조차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은 이렇게 따지면 내 인생에서 ‘본’ 영화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그 정도냐고? 그 정도다. 그렇다면 난 친구들이 아는 것처럼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인가 아니면 영화 보는 행위를 시도하다 멜라토닌의 분비로 수면욕을 채웠을 뿐인 사람인 건가. 영화를 보다 몇 분을 졸면 그 영화를 본 것으로 간주해도 되는 것일까. 5분? 10분? 아니면 설마 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