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들은 모두 맥덕이었다
부산은 서울만큼 크래프트 펍이 많다. 그래서 부산을 여행하거나 출장으로 들를 때는 펍을 몇 군데 들르게 된다. 언젠가 남포동에 있었던, 지금은 없어진 펍, 아키투에 간 적이 있었다. 손님이 나밖에 없었던 애매한 오후 5시. (어쩔 수 없이) 주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쉽지 않다는 말을 계속 들었다. 나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다 고만고만한 사람이 좋아하고 저변확대가 되지 않으며 가본 몇몇 펍도 그리 사람이 많지 않고, 어떤 브루어리는 사정이 어려워서 문을 닫고,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다음 해였던가. 부산대 근처의 펍, 컬러드에도 혼자 갔다. 역시 애매한 시간, 손님이 없어서 바에 앉아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별생각 없이 공감할 수 있는 화제라고 생각해서 서울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어려운 것 같더라, 고 말하니 그래요? 라며 서버가 되물어봤는데 그 억양에는 여기는 안 그런데 서울은 그런가 봐요?, 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나의 추측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컬러드에는 손님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내가 부른 카카오택시가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부산은 잘 되는 건가? 크래프트 펍이란 것이. 그러면서 서울의 몇몇 장소를 생각해 봤고, 서울도 잘 되는 곳(공덕의 미스터리 브루잉, 성수의 어메이징 브루어리, 소격동의 기와탭룸 등)은 여전히 사람들이 드글드글하고 아닌 곳은 한산하고 그러긴 하더군. 하지만 지난주 친구와 갔던 용산의 핸드앤몰트 브루랩은 19시부터 문 닫을 때까지 우리 포함 두 테이블만 손님이 들어왔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그리 드문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한산한 곳이 더 많은 것도 내 경험으로는 맞는 데이터라는 것. 부산 역시 한산한 곳과 활기 넘치는 곳이 공존했다. 부산은 서울보다 크래프트 맥주의 인구가 많은 곳인가, 라는 스토리를 발굴해 볼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다만,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출장 중 들렀던 펍 두 군데는 모두가 활기 넘치는 곳이라 그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든. 민락동에 있다. 광안리 지구. 해변에서는 약간 안쪽이라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이날 여기를 찾아간 경로 내내 난 바다를 보지 못했다. 주든은 송정의 툼브로이 브루어리가 직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계산할 때 그런 답을 얻었으니 맞을 것이다. 툼브로이는 독일 맥주를 하는 곳. 헤드 브루어도 독일인. ‘주든’은 독일어로 ‘남쪽’이라는 뜻. 툼브로이보다 남쪽에 매장을 냈다고 해서 남쪽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작정하고 가야 갈 수 있는 송정 툼브로이의 맥주들을 광안리 번화가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이곳은 올해 봄, 부산 중앙동의 마이 행아웃에서 주인장과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추천받은 곳이기도 했다. 툼브로이는 정말 너무 먼 것 같아요. 아 툼브로이가 광안리에 직영을 냈어요. 한 번 가보세요! 그래서 그로부터 5개월 후, 가게 된 것이다. 툼브로이의 맥주를 난 좋아한다. 독일 맥주에는 편안함이란 것이 있다. 독하고 진하고 시고 걸죽하고... 누가누가 더 특별한가를 뽐내는 크래프트 맥주를 먹다가 잘 만들어진 독일 맥주 헬레스, 둔켈, 바이스를 마시면 편해진다. 택시에서 내려 주든에 혼자 들어갔더니 거의 만석. 놀랐다. 바 테이블의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난 자리에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만석의 컨디션은 내가 나올 때까지도 유지됐다. 맥주 한 잔을 주문했고 마셨다. 역시 편했다. 그래도 이곳은 일반 맥주를 파는 그런 펍은 아닌데, 분류하자면 크래프트 펍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내 오른쪽 옆자리는 두 명이 계속 맥주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왼쪽 바 테이블에는 혼자 온 맥덕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맥주를 다 마시고 디저트로 마무리까지 하고 계산했다. 그러고보니... 부산에는 맥덕들이 많나?
프리츠프리츠. 전포동에 있다. 일명 서면이라는 곳. 여기는 숙소와 가까워 그냥 한번 가봤다. 두 번째 방문인데, 첫 방문 때 주인장은 구석에서 거대한 레고 에펠탑을 조립하고 있었다. 이번에 가니 그 에펠탑은 거대한 아크릴 장 안에 고이 모셔져 홀 중앙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여기는 주든보다 더 헤비하고 전문적인 크래프트 펍이다. 뭔지도 잘 모르겠는 몽키쉬 맥주가 들어왔어요! 라는 인스타그램 피드가 있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많다. 정말 바글바글한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일단 여기는 주인장의 맨파워로 움직이는 곳이라는 결론이다. 맥주도 맥주인데 내내 지치지 않고 친절하다. 그 덕인가? 정말 그것뿐일까? 그러고보니 여기도... 혼자 앉아 맥주를 즐기는 맥덕들이 많다. 몽키쉬 맥주를 종류별로 싸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 그들은 모두 맥덕이었다.
어쩌면 부산에는 서울보다 맥덕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부산의 크래프트 맥주 신은 서울보다 활기찬가? 라는 가정에서 시작했다가 그건 아니겠지, 서울이나 부산이나 비슷비슷하겠지 뭐 특별한 게 있겠어. 그래서 최근 갔던 부산의 활기 있었던 펍이나 소개하자며 글을 쓰다보니 이거 정말 부산은 맥덕들이 더 많은, 크래프트 맥주의 에너지가 서울보다 더 강한 곳이 맞았던 것인가? 로 귀결 중이다. 스티븐 킹은 말했다. 글이란 것은 유기체와 같아서 자신이 무엇을 쓰게 될지 자신도 모르고 글이 자신을 이끈다고. 근데 그건 장편 소설이나 그런 거겠고, 이렇게 짧은, 3,000자도 안 되는 레터 글에서도 그런 게 가능한 건가? 그게 맞나? 알 수 없다. 아무튼 부산에 갔는데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펍을 가고 싶은데 일반 펍 말고, 라는 까다로운 조건이라면 광안리에서는 주든, 서면에서는 프리츠프리츠, 그리고 이 레터에서는 쓰지 않았지만 해운대에서는 기네스 해운대점 정도가 좋겠다. 적당한 북적함에 신이 난 채로, 혼자 가도 그리 외롭지 않게 맥주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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