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로 달려가는 시간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다.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약간의 흥청망청, 가게마다 울리는 캐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비현실적이지만 달달한 크리스마스 시즌 로맨스 영화, 흰 눈이 쌓인 풍경. 털과 선물과 오너먼트와 반짝이는 빨간색과 초록색이 어지럽게 놓인 따뜻한 실내. 대형 서점에 가득 꽂힌 크리스마스카드. 이런 이미지들은 나를 무장 해제시켰고, 마음을 놓이게 했으며, 설레게 했다. 물론 오래된 이야기다. 그렇다고 마냥 어렸을 적 끝나버린 이야기도 아니다. 성인이 돼서도 꽤 오래 난 크리스마스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즐겼다. 유지됐다.
얼마 전 회사 근처 파스타집에 들어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은 유독 따뜻했고, 내가 좋아하는 캐럴(오 홀리나잇이었던가)이 나오는데, 반짝거리는 장식도 평범하지만 예뻤다. 그래서 빈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그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자고로 이런 따뜻하고 포근한 실내가 제격이지, 이게 크리스마스지.’ 이런 생각을 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아주 작은 흔적 같은 미련이 불쑥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물론 자리에 앉아 키오스크로 알리오 올리오 곱빼기를 주문하며 나의 크리스마스 환상은 바로 꺼졌다.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연말은 나의 이것저것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어딘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제공하는 시기였다. 역시나 조금 흥청망청한 느낌이 있었고, 실제 내가 진행하던 사업이 끝나던 다음 해로 이월되든 상관없이 정신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종결’로 다가가고 있었다. 어찌 됐든 하나의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를 기다리는 시기였고, 약간의 술을 늘 들이켠 것 같은 느긋함이 자리 잡았다. 바로 그럴 때. 눈이 오면 예뻐서 좋았고, 약속이 생기면 조금 더 즐거웠으며, 크리스마스 장식을 품은 도시의 풍경도 평소와는 다르게 낭만적으로 보였다. 따뜻했고 즐거웠다. 미세한 희망이 함께 했다. 역시 이런 기분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구가 하나둘 꺼지기 시작할 때는 잘 모른다. 여전히 반짝이는 것 같고 환하고 따뜻하며 축제 같다. 하지만 하나, 둘, 셋, 넷, 다섯... 점점 나가는 전구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알아차린다. 꺼지고 있구나. 나에게 그런 전구 다발이 있다. 처음 하나둘 꺼졌을 때 여전히 나는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가 지나면서 꺼진 불이 많아질 때, 하지만 그 속도가 느려서 어두워지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기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짝이는 전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모두 필라멘트가 끊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 언젠가 올 텐데, 그게 올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난 하고 있다.
일이 많았지만 늘 일은 많았고, 올해도 바빴지만 작년과 5년 전에도 바빴다고 생각했을 나는 올해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전구는 모두 꺼졌다. 그렇게 2월 6일과 6월 13일과 10월 27일과 아무런 다름이 없는 12월 15일을 보내고 있다. 윤석열이 작년 12월 3일 계엄을 선포하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6개월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데, 지금 보면 여전히 2025년은 참으로 짧고 빠르다. 그리고 내년이 되면 난 더 빠른 2026년을 보내게 될 거라는 겁을 먹는다. ‘겁’이라고? 거봐, 이렇다니까. 언젠가는 낮술을 한 것 같은 하루를 보내던 연말, 난 지금 겁을 먹은 중년이 되어있다. 전구가 모두 꺼진 탓이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경의·중앙선 전철로 출근한다. 운동을 하다 보면 창밖으로 조금씩 동이 트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흐린 날은 운동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차를 몰고 가는 시간까지도 어둡다. 어둑한 용담리 공영주차장으로 차를 꺾는 순간,
‘정말 스산하기 짝이 없네. 하지만 동지가 지나면 다시 해가 길어지겠지, 그럼, 좀 덜 답답하겠지, 그러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팡. 구석진 곳 전구 하나가 켜졌다. 동지(12월 22일) 이후 조금씩 해가 길어지는 것에 대한 안도. 약간의 희망. 불가능하지 않은 여름의 풍경 따위의 것들이 스산한 주차장을 가로지며 떠올랐다. 그런 것들이 전구 하나의 필라멘트를 다시 연결했다.
여전히 나에겐 동지가 하나의 기점이다. 그걸 넘으면 더 추운 1월이 기다리고 있지만, 기분 나쁜 한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2월이 대기하고 있지만 마음은 조금 따뜻한 것 같다. ‘따뜻하다’는 팩트일 리가 없다. 그럴 것 ‘같다’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앞으로 6개월은 점점 해가 길어질 테니까. 그래서 밝은 것들이 오래 지속될 것 같으니까. 팡!
선배 U는 눈이 오면 예뻐서 좋다고 했다. 차도 몰고 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래도 난 눈이 아직 좋던데? 라고 말했다. 난 그것이 선배가 붙잡은 마지막 늙지 않음이라고 생각했다. 눈 내리는 게 아직 좋다는 U처럼 나도 끄지 않은 전구를 하나 붙잡았다. 동지로 달려가는 시간. 해는 곧 길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