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장님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 있네”
며칠 전 학교 선배 U와 합정동에서 맥주를 마시다 들은 말이다. 데이터 기반의 IT 회사를 경영하는 U는 정보자원팀장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공공기관에 소속되어있는 나에게 “넌 지금 문돌이지?” 라고 거침없는 정의를 내렸다. 분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여기 시스템 자체가 느리긴 하거든. 그런데 어떤 대목에서 저런 소리를 들었더라. 요즘은 개발을 다 AI가 하고 있어 특급 개발자가 필요치 않은 세상이 되었다, 이즈음이었던 것 같긴 한데.
‘꼰대’라는 개념에는 많은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예전부터 좋아할 리 없던, 이 사회에서 정형화 되어있는 그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적어도 노력은 하고 있어야지, 지금 그 결과 난 내가 되지 않으려 했던 꼰대와 좀 다른가? 약간은 다르...겠지? 아닌가? 그래도 지금 나를 꼰대로 평가할 사람은 과거의 나와는 또 다른 사람이니 지금 그들에게는 내가 여전히 꼰대일까, 그럼 꼰대 겠네... 나이가 이런데 노력이란 걸 한들 꼰대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나, 꼰대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은 가장 덜 꼰대스러운 게 되나? 그런데 꼰대이면 어떤가, 그렇다면 되도록 무해한 꼰대가 되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되지? 꼰대는 속성상 해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꼰대가 되면 말이라도 줄이라는데, 그게 그나마 무해한 꼰대의 조건일 텐데 왜 난 아직도 말이 많지, (이 글에서도 이미 말이 많다) 이런 생각들. 문득 하게는 된다. 어떤 조직에서 거의 막내로 시작해 시니어가 될 때까지 견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드는 평범한 생각이다. 그런데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장님’이라니. 그런 표현에 대해서는 도무지 생각한 바가 없다. 굉장히 흔한 표현이지만 그 대상이 내가 될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 가운데 거대한 창이 내 몸을 관통했다.
“얘가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장님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 있네” 이 말에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일단 ‘얘가’는 나보다 적어도 나이가 같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번에는 연장자였다. 보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 꼰대를 향해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 아니던가. ‘어우 세상 물정 모르는 이 부장 놈아...’ 이런 식이겠지. 그걸 연장자에게 거꾸로 들었다. 굴욕적이다.
게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장님’에게서는 어떤 게 떠오르는가.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일과 시간에 사우나에 가서 시간 보내다가 돌아와서는 비슷한 연배의 부장끼리 모여 담배 피우며 낄낄대고, 커피믹스와 담배가 섞인 입냄새로 사무실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성과는 모두 실무자에게 미루고 밖에서 어떤 환경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게 뭐란 식으로 회사 다니는 관리자라는 느낌 아닌가. 난 아직 아닌 거 같다고. 그러기엔 지금도 실무를 너무 많이 해. 가장 중요한 건 난 부장도 아니고 차장이란 말이다. 부장이기라도 하면 덜 억울할 텐데, 억울해라.
문장의 마지막 ‘하고 앉아 있네’서는 뭔가 정적이고 침체한 느낌이며 구부정하게 앉아 있어 배가 산더미같이 나온 중년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그렇다고 ‘... 소리를 하고 걸어가네’ 혹은 ‘뛰어가네’ 따위의 표현을 하지는 않으니, 관용적으로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래도 말로 얻어맞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는 말씀.
아악 아니야 내가 그럴 리는 없다구, 라고 내적 비명을 지르다 정신 차리고 조금은 생각을 해봤다. 내가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속성상 꼰대임이 틀림없을 텐데, 마찬가지로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장님 아니 차장님은 과연 피해 갈 수 있었을까. 그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용구가 나이지 않을 확신이 정말 있는 건가. 실은 모르겠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정말 아닌가. 그래서 ChatGPT에게 물어봤다.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장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 있네” 이 문장에서 떠오르는 부장을 그려달라고. 결과는 아래와 같다. 일단은 좀 다른 거 같아서 안심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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