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주간을 운영할 때가 있었다. 생일이 낀 그 주에 이런저런 약속을 잡고 생일 축하도 받고 선물도 받고,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은데 기억력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요즘에도 ‘생일 주간’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생각나는 거 보면 실존했던 제도였던 것 같다. 초여름을 지나 여름의 정점으로 들어가는 즈음의 나이, 30대 초반의 일이다.
지금은 생일 주간을 운영하지 않는다. 모든 게 그렇듯 생일이라는 것도 그 반복의 횟수가 많아지며 무뎌지게 마련이다. 카카오톡의 생일 정보도 비공개로 해놓은 지 좀 됐다. 생일 당일뿐 아니라 임박했거나 막 지나간 친구의 생일까지 챙겨주는 친절한 플랫폼이 다른 사람에게도 내 생일을 그렇게 알릴 생각을 하니 신경이 쓰였다. 이젠 아주 가까운 소수에게 축하 혹은 언급당하며 쓱 지나가고 있고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좋다.
생일에 연가를 쓰기도 했다. 집에서 뒹굴뒹굴하거나 개인 약속을 쓰며 자축하는 것도 썩 괜찮았다. 그런데 ‘심드렁’의 게이지가 올라가면서 연차 이벤트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예전엔 생일에 휴가를 쓰기도 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났는데 얄궂게도 그날이 마침 2025년 생일 전날이었다. 지난주의 일이다.
침대에 누워 예전처럼 생일 연가를 써볼까, 아니지, 내일은 오전에 회의가 있지, 그럼 오후 반차라도 써볼까, 오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VPN에 접속해 회사 그룹웨어를 로그인하고 오후 반차를 올려버렸다. 그런데 국장에게 너무 갑자기 새벽부터 올리는 오후 반차라, 보통은 사유에 ‘연가’를 적는데 그날 아침에는 ‘연가’라고만 적은 사유란을 보고 있을 국장에게 뭔가 이유가 있음을 어필하고 싶어졌다. 얜 뭐 만날 노는 거 같아, 이런 인상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연가’ 뒤에 괄호를 열고 “생일 휴가 쓰겠습니다!!” 라고 쓰고 괄호를 닫았다. 느낌표를 두 개나 넣었다. 그날 아침의 나는 왜 그랬을까. 어차피 국장만 보는 건데 뭐 어때, 라는 거였겠지.
오전의 부서장 회의는 상암이 아닌 파주에서 했다. 80km를 달려 파주에 도착해 마침 방화벽이 고장 나 수리 차 와있는 전산실 팀원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회의실에 앉으려는데, 보존관리팀장 T가 대뜸 오늘 생일이라고 휴가를 쓰는 거야? 뭐 그런 비슷한 말을 했다. 어, 맞는데 아니 어떻게 알았지? 우리 팀 근태 문서는 다른 팀이 보지 못하도록 해놨는데, T는 워낙 그룹웨어 마니아라 내가 모르는 무슨 방법이 있었나?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부재중’에 다 뜨잖아, 라고, 왜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말했다. 아 맞다, 부재중. 그룹웨어의 그 빌어먹을 기능 ‘부재중’. 근데 ‘부재중’에 사유도 보이던가?
회의 시작 전까지 시간이 남아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고 VPN에 접속하고 그룹웨어에 들어가 ‘부재중’을 클릭했다. 작은 팝업창이 노트북 화면 정 가운데 뜨더니 내 이름 옆에 ‘오후 반차(연가(생일 휴가 쓰겠습니다!!))’가 적힌 게 정확하게 보였다. 내가 부서장이어선가 스크롤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위치, 팝업창 정중앙에서 아주 선명했다. 그리고 느낌표 두 개는 나를 날카롭게 죽일 듯 노려보는 중이었다. 와 이게 정말 보이네. 그때 옆에 앉은 수집팀장 J가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거 부재중, 사람들 많이 봐요.” 바로 그 순간 나와 생년월일이 똑같은 걸로 20년간 잘 알려진 경영관리팀장 S가 들어왔고, 보존관리팀장 T는 S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했고, S는 어머 어떻게 알았냐고 했고, 내 다른 쪽 옆에 앉은 전략기획팀장 M은 아니 그런 걸 왜 거기에... 이러면서 나를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