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디까지 유효한가, 하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 형 S는, 4살 된 아이를 데리고 유럽 여행을 몇 주 다녀왔다고 했다. 오래전 이야기다. “형, 그 애 그거 기억이나 하겠어요?” 사회성이 지금보다도 엉망이었던 당시, 나의 불필요한 말에 늘 인자한 얼굴을 하던 S가 벌컥 짜증을 냈다. “다 기억날 거야!” “아... 네, 그럴 거예요.” 괜한 말을 했다 싶어, 그렇게 얼버무렸다.
소설가 김영하는 어렸을 적 좋은 경험은 그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당시의 좋았던 ‘기분’이 남아 현재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김영하다운 그럴싸한 말이긴 한데, <흑백요리사>의 파인다이닝 요리사가 온갖 산해진미 재료들을 가져와 싹 다 갈아버리고 그걸 또 다른 재료와 섞어 소스로 만든 다음 메인 음식 옆에 거품으로 플레이팅하는 것을 보는 허탈함 혹은 비효율이 생각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거품 소스 안에서 간혹 명확하게 ‘윌리엄 터너’ 같은 맛이 날 수도 있겠지. 희박한 승률의 도박이지만 재미있는 게 남을 수 있는 시도이기도 하다.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5월까지 윌리엄 터너 전시를 연다. 전시명은 왜인지 영어인데, <Turner: In Light and Shade>. 1985년의 서울갤러리 전시 이후 단독 전으로는 처음일 것이다. 40년 전 터너 그림을 보고 충격받았던 꼬맹이는 이제 중년 아저씨가 되었고, 다시 그림을 만나고 싶은데 거리가 멀다. 청량리에서 경주 가는 KTX를 검색하고 경주의 숙소를 검색하다가 폰을 내려놓으며 에혀, 갈 수 있을까, 그러는 중이다. 마침 경주에 가족과 함께 놀러 간다는 M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리 집중해서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나도 윌리엄 터너의 거품 소스 때문에 알게 된 전시니까.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서는 D의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나는데, D는 가수 윤시내의 노래 중 ‘더벅머리 더벅머리’ 하는 가사의 곡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옆에서 계속 불렀다. 그 부분만. 그러나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윤시내의 디스코그래피를 뒤져도 발견할 수 없는 노래라 자신이 헛것을 기억하고 있나,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 정답을 발견했는데, 1981년 ‘동경 가요제’에 출품하기 위해 윤시내가 국내에서 부른 노래가 ‘덧니박이 더벅머리’였다는 것. 제목에 약간의 오류는 있었다만 존재하는 노래이긴 했다. 그러나 실제 ‘동경 가요제’에서 윤시내는 그 노래를 포기하고 ‘오직 너만을’을 불렀다. 결국 이 세상에서 단 한 번 불리고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노래를 초등학생 D가 듣고 지금까지 기억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남다른 경험과 그 기억에 따른 어드벤티지란 뭘까? 문화적 자양분이 되었나. 아니면 김영하의 말마따나 좋은 기분이 되어 성인이 된 D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나. 잘 모른다. 나에게 터너의 그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래도 알 수가 없다. 그 최솟값은 적어도 이런 레터의 내용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것이겠지. 허무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최댓값일 수도 있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쨌든 재미있는 게 남은 거다.
이만하면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