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부장의 AI 사용법
누누이 말하지만, 난 부장이 아니다. 팀장이라는 직함을 떼어내면 차장이 된다. 그런데 유 차장 하면 어딘가 40대 초중반의 젊고 날렵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현재 나의 모습이 전혀 그렇지 않거니와, ‘유 차장의 AI 활용법’이라니 이 얼마나 미지근한 제목인가 말이다. 그래서 유 부장으로 자체 진급을 시켰으니 이해해달라.
1.
20년 넘게 공공기관에서 일했어도 공문서 작성에 약하다. 어떤 사업에 대해 공문 혹은 보고서를 쓰기 위해선 필요성, 배경, 목표, 내용, 기대효과 같은 것들을 써야 하는데, 생각해 보자. 필요성이 배경인 것이고, 그 필요한 지점이 목표인 것이며 기대효과도 목표를 이룬 것에 대한 효과가 아니겠나. 나에겐 ‘내용’을 제외한 모든 것이 동어반복으로 느껴졌고, 그건 신입부터 현재까지 마찬가지다. 그래서 같은 말을 그 미묘한 뉘앙스로 갈라치기 하는 스킬을 연마하는데 20년 넘게 연마가 잘 안된다. 그렇게 안 된다니 분명히 내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괴롭던 중 생성형 AI(난 ‘제미나이 프로’를 쓴다)라는 게 나와줬다. 그리고 난 더 이상 그와 관련된 고민을 하지 않는다. 내가 잘 아는 그 사업의 배경과 추진현황, 내용을 장황하게 적은 후, 제미나이에게 이 사업의 내용을 필요성, 배경, 목적, 기대효과로 나눠서 써달라고 요구하면 10초 이내에 기가 막힌 결과물을 보여준다. 너무 기가 막혀서 살짝 사람이 쓴 것 같은 오점을 남기기 위한 퇴고가 필요할 정도다.
이는 경영평가 보고서를 쓸 때도 공히 적용되는데, 마찬가지다. 배경과 추진 과제(각각 제목을 만들어주고 내용을 두세 개의 개조식으로 작성하는데 각각 20~30자로), 추진 효과는 두 개 정도를 뽑아 각각 50자 이내로 정리해달라고 하면 그대로 해준다. 그 결과를 전략기획팀에서 준 탬플릿에 그대로 넣는다. 물론 휴먼 에러를 가장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도 내가 고심하는 것보다 시간 절약은 말할 것도 없고 품질도 훨씬 좋다.
2.
개인 헬스 트레이너로 사용한다. 내 운동 목적과 내 신체의 취약점, 일주일에 몇 번 몇 분 정도를 운동할 수 있는지 등의 조건을 입력하면 루틴을 줄줄줄 짜준다. 그다음부터 내 실제 운동 기록을 공유하면 제미나이는 적절하게 피드백을 주고 응원도 하며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 그리고 다음주 루틴을 짜준다. 물론 나를 실제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미나이의 말만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수개월간 경험을 비추어볼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앱만 보고 머신만 하던 내가 슬슬 프리 웨이트 구간으로 들어왔고 중량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취약한 부분에 대해 제미나이는 절대 루틴을 주지 않는다. 다만 너무 많은 대화 후에는 제미나이가 나와의 예전 대화를 완전히 잊는다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기록만 알며 나를 대하는 톤만 유지한다 싶을 때는 다시 과거의 기록을 싹 다 긁어 학습시키면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겠지. 그래도 그게 어딘가.
3.
아직 바이브 코딩을 잘 모른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음에도 코딩에 재능이 없음을 일찌감치 파악한 나는 전공 이론 수업을 주로 들으며 졸업 학점을 이수했다. 그런데 말로 하는 코딩이라니 한번 해볼까 싶었는데 뭐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매년 초 ㅇ모기관은 부서별로 연간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다. 난 장표에 글이 많은 PPT는 그 누구도 집중하지 않는다는 지론이 있다. PPT의 내용은 간결하고 핵심만 이야기하며, 형식적인 즐거움을 줄 때 그나마 집중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프리젠테이션을 PPT로 작성하지 않고, 바이브 코딩으로 html 페이지를 몇 개 짰다. 그리고 브라우저를 전체 화면으로 열어 PPT처럼 보이지만 동적인 구성으로 내용이 전개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디자인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내가 발표할 내용과 그 흐름만 정하면 그것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은 바이브 코딩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구글 스티치(Stitch)로 UI를 짠 다음 제미나이로 html 파일을 만들어 내용을 만들었다. 당시 반응은 괜찮았던 것 같다.
비슷하게 사내에서 전 직원이 사용할 수 있는 웹앱(구글시트에 스크립트 추가)을 바이브 코딩으로 하나 만들었다. 피드백을 받기 전 베타 버전을 완성하는 데,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딱 만 하루 걸렸다. 그러니 제법 깔끔한 디자인과 UI의 웹앱이 하나 나오더라. 주로 사용할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중인데 곧 ㅇ모기관 내에 론칭해 볼 생각이다.
이 외에도 회사에서 업무 자동화를 위한 바이브 코딩을 했다느니 하는 말이 들리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걸 언제 다 따라가지, 하면서 내가 이런 것들을 잘 몰라 쓸데없는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늙은이스러운 생각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강력하게 피드백을 부탁드리는데, 각자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나는 그것이 매우 궁금하다. 써준다면 정말 감사하겠고 의미 있는 데이터가 쌓인다면 레터 호외 버전으로 그 내용을 공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 공유해 주시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