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아직 제목이 없는 두 번째 책 원고를 위한 브루어리 투어를 다녀왔다. 지난주 수요일 새벽에 떠나 이번 주 월요일 돌아왔으니, 5박 6일의 제법 긴 일정이었고, 그런 만큼 동선도 길었다. 원고는 각 브루어리를 중심으로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원고에 쓰이지 못할, 혼자 차를 몰고 수백 킬로를 다니며 하루에 평균 16,000보 걸은 여행 이야기를 레터로 죄다 풀어버릴까,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너무 길어질 것이며 책 원고로 쓸 이야기와 겹치기도 할 것이다. 결국 이번 여행에 대한 풀 스토리는 아무 곳에도 쓰이지 못할 것인가.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 그럼 레터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순간을 써보면 어떨까.
그래도 이번 브루어리 투어 일정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그래야 이야기할 부분이 어디쯤인지도 알 수 있을 테니. 여행은 통영에서 시작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라인도이치’와 ‘플레이볼 인 통영’에서 A 작가와 맥주를 무진장 마셨다. 다음날은 순천의 순천만에서 비상하는 흑두루미 떼를 본 후, ‘순천 양조장’에서 맥주와 햄버거를 먹었다. 다음 일정은 나주인데, 순천에서 여수 아래 백야도까지 갔다가 해안 길을 타고 드라이브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주 ‘홉플로우’에 도착해 수도원 맥주를 받고 견학까지 마친 뒤, 바로 전주로 이동해 ‘노매딕 비어 탬플’에서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은 홍성의 ‘이히브루’. 모닥불과 군고구마와 함께 맥주를 마셨고, 거기서 평창까지 장거리 이동 끝에 마지막 브루어리 ‘화이트 크로우’를 들렀다. (플레이볼 인 통영을 제외하고) 모두 여섯 지역의 여섯 브루어리를 그렇게 돌았고, 남에서 북까지, 바다에서 산까지, 이른 봄에서 다시 겨울까지 이어진 수백 킬로미터의 종횡무진이었다. 기나긴 여정, 그리고 강행군이었다. 이중 내가 레터로 쓸 이야기는 ‘백야도까지 갔다가 해안 길을 타고 드라이브하기로 했다.’ 이 부분이다.
여행 일정을 짤 때 통영을 간 김에, 남해 해안을 되도록 오래 보고 싶었다. 남해를 좋아한다. 지도를 보고 생각한 것이 순천에서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바로 밑 여수로 갔다가 다시 올라와 나주로 가는 것. 조금 돌지만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여수는 어디를 가야 하나, 드라이브만 하면 되나. 그때 지도에 백야도라는 작은 섬이 보였다. 그 섬의 맨 끝에 등대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도를 확대하니 백야도에서 여수로 올라와 남해안 섬들을 잇는 다리를 몇 개 건널 수 있는 루트가 보였다. 그정도면 남해를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길의 종착지는 고흥이었다. 고흥에서 위로 올라가 나주로 도착하는 게 가능했다. 그럼 고흥에는 뭐가 있더라.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 ‘우주 발사대 전망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냥 멋없게 지어 놓은 관광지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겠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우주를 동경하던, 천문학자가 꿈인 꼬마였다. 게다가 나로호가 쏘아 올려진 곳이 보이는 곳이라니, ‘우주 발사대’라는 말만으로도 놀랍게 가슴이 희미하게 뛰었다.
순천의 아침은 여행 중 가장 쾌청했다. 차를 몰고 백야도로 향했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여수를 관통해 백야도로 통하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 에메랄드빛이라고 하면 너무 구태의연하고 옥빛이라고 하면 너무 올드해서 쓰기 싫은데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바로 딱 그런 빛깔’의 바다가 정말 ‘짠’하고 눈앞에 나타났다. 남해의 좋은 점은 육지 바로 앞에 작은 섬들이 하늘 위에 작고 동그란 구름들이 둥실 떠 있듯, 바다 위에 그렇게 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귀엽고 아름답다. 시퍼런 망망대해가 바로 보이는 동해와, 시간을 못 맞추면 펄만 봐야 하는 서해와는 전혀 다르다. 백야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그런 바다 풍경이 계속 보였다. 백야도의 어떤 언덕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내려다봤다. 파란 하늘과, 바로 딱 그런 빛깔의 바다. 작은 섬과 집. 바다를 가로지르는 어선. 양식장. 사람의 흔적이 함께 있는 게 더 조화로웠다. 그 풍경을 한참 눈에 담고 차에 올랐다. 이제 드라이브를 시작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