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2026년 영화 기대작
지난 여행 중 도착한 홍성의 한 호텔은 객실에 85인치 TV를 비치하고 있었고, 온갖 OTT를 모두 볼 수 있는 셋톱박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요즘 숙소의 트랜드 중 하나인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술에 덜 절은 어느 날 밤, 난 애플TV의 <F1 더 무비>를 선택했다. 브래드 피트는 늙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레이싱 장면은 박진감 넘치며, 등장인물 캐미도 볼만했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마지막 레이싱할 때, 나는 것(flying)처럼 보이는 레이스 신은 나마저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최근 IPTV로 본 다른 영화로는 <웨폰>이 있다. 잭 크래거 감독의 전작 <바바리안>을 제법 재미있게 봤던 터라, 그리고 애들이 똑같은 시간에 집을 뛰쳐나가 다 사라졌는데 한 아이만 실종되지 않았다는 지나치게 매혹적인 도입부가 좋았던 터라, 비교적 높은 요금을 지불하고 관람했다. 도입부가 지나간 이후 전개는 조금 실망스럽다가 그래도 강력한 마무리가 마음에 들어서 ‘호’ 영화로 자리매김하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최근 본 영화가 이 두 편뿐이다. 언제 극장에 갔더라. 정말 언제 갔지? 극장에 가는 습관뿐 아니라 영화라는 걸 보는 습관까지도 사라지는 것 같다. 정말 이럴 필요까진 없는 것 아닌가. 2026년, 올해 내가 기대하는 영화를 꼽아보며 강제로 영화 보는 습관에 심폐소생술을 해볼까.
시작하기에 앞서, 마블의 모든 영화와 <듄> 시리즈는 안타깝게도 내 관심사가 아니다. 마블은 한참 열심히 봤지만 이젠 지쳤고, <듄>은 1편에서 내 취향이 아니란 걸 알았다.
우선 스티븐 스필버그의 < 디스클로저 데이 Disclosure Day>(2026)는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티>와 <클로스 인카운터>로 영화 꼬마 인생을 시작한 나로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SF는 무조건 ‘호’로 시작한다. 기상캐스터 에밀리 블런트가 방송 중 기괴한 외계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생중계되는데, 과연 외계인은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인가. 흥미진진한 설정 아닌가. 그러나 그의 최근작을 보고, ‘와 정말 재미있다’라고 생각한 건 <스파이 브리지>(2015)였고, <더 포스트>(2017)와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재미있음’ 구역이긴 하지만 조금 아래 머물러있는 정도, 그 이후 작품들은 더 아래에 있고... 그래서 스필버그에 대한 기대치가 조금씩 내려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은 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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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넷 Hamnet>(클로이 자오, 2025)은 지금 개봉 중인데 극장 가는 습관이 죄다 죽은 탓에 그냥 보고 싶다는 생각만 침대에 누워서 하고 있다. OTT 어디선가 가지고 오면 좋겠지. 막스 리히터의 ‘Of the Undiscovered Country’는 어떤 대목에서 나온 걸까. 역시 작년 영화 중 < 시크릿 에이전트 O Agente Secreto>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2025)는 반응이 워낙 좋아 보고 싶은데, 결정적으로 멘도사 필류의 영화를 아직 하나도 보지 못했다. 올해 찬란이 수입해 개봉한다는 소식이 있다. 일단은 기다리는 중. 개봉 중인 < 프로젝트 헤일메리 Project Hail Mary>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2026)도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다. SF인데 외계인과 만나 뭔가 함께 미션을 수행한다는 것. 거기까지 만으로도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꼭 보겠다, 결심할 수 있었는데, 산드라 휠러가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더 보고 싶어졌다. <토니 애드만>에서 산드라 휠러가 휘트니 휴스턴을 목청껏 부르는 장면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은데, 여기서도 꽤 인상적이라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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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 중 < 위시풀 씽킹 Wishful Thinking>(그레이엄 파크스, 2026)도 궁금한 영화 중 하나다. SXSW 피처 경쟁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인데, 한 커플이 쌍둥이 테라피스트에게 심리 치료를 받은 후, 그들의 관계가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SF 코미디물. 예를 들어 커플이 싸움이라도 할라치면 뉴욕 증시가 요동치고, 캘리포니아에 지진이 난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재미있게 잘 풀면 재미있지 않을까? 상도 받았다니 잘 푼 것 같고.
올해 선댄스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모두 받은 베스 데 아라우조 감독의 < 조세핀 Josephine>(2026)도 기대작이다. 채닝 테이텀 주연작인데 8살 딸(조세핀)이 한 여성의 끔찍한 성폭행 피해 현장을 목격하면서 이후 조세핀에게 가해지는 트라우마가 숨을 막히게 한다는 내용. 잔혹하겠지만 그 압도적인 밀도가 궁금하다. 아직 초반이지만 현재 IMDb 8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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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티쿠스 Leviticus> (에이드리언 치아렐라, 2026)는 네온이 배급 준비 중인 영화로, 게이 소년 커플의 성적 지향성을 치료하려던 마을 사람들이 악령을 깨우게 되고, 그 악령은 끔찍하게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 다가가 죽인다는 설정이다. 이거 상당히 흥미롭고 잔인할 것 같다. 독특한 설정이 예전의 <팔로우>를 생각나게 한다는 리뷰가 있는데, 그러고 보니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은 <언더 더 실버레이크> 이후로 영화가 없는 건가? 뒤져보니 올해 8월 북미 개봉 예정인 < 플라워베일 스트리트 Flowervale Street>(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2026)가 있는데, 마을 전체가 공룡 시대로 타임슬립 하는 이야기라고? J.J. 에이브럼스 제작이기도 하고 전체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다는데, 이것도 당장 기대작에 넣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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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의 최근 공포영화 <톡 투 미>나 <나는 빛나는 TV를 보았다>를 보며 A24의 호러가 이제 매너리즘에 갇힌 건가, 라는 생각을 하던 터에 아리 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이건 도대체 뭘까, 싶어 A24에 조금씩 식고 있긴 하지만, < 백룸 Backrooms>(케인 파슨스, 2026)은 어쩔 수 없는 기대작이다. 이런 공간 공포 나에게 잘 먹힌다. 균일한 것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나갈 수 없는 답답함이 주는 기묘한 정서가 내 뇌를 아주 간질간질하게 만든다. 흥미롭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 반응이 좋았던 공간 공포물 < 8번 출구 8番出口>(카와무라 겐키, 2025)는 왜 아직도 IPTV에 나오지 않는 거지. 기다리고 있다. 정말 마지막으로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 쓸모 있는 귀신 ผีใช้ได้ค่ะ>(랏차품 분반차촉, 2025)도 궁금하다. 아내의 유령이 진공청소기로 빙의해 돌아오고, 유령 며느리가 시댁에 인정받기 위해 공장에 출몰하는 귀신들을 청소해주겠다는 내용이 어떻게 재미없을 수 있을까. 이 영화도 국내 수입은 됐다는 소식이다. 아, 나홍진의 < 호프>(2026)를 빼먹었네. 감독의 인성이 어쩌니 해도 매번 작품을 들고나오면 어떤 걸 들고 왔나 궁금한 감독이긴 하다. 한국 영화 기대작은 <호프> 외에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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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궁금하고 보고 싶다는 영화를 열거하긴 했으나, 이미 개봉 중인 영화도 보러 가지 않는 마당에 이 많은 영화 중 난 얼마나 볼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참고로 이 레터는 "이런 내용의 레터를 보내주세요", 라는 피드백에 의한 것이다. 의외로 고객 서비스가 발동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활발하게 피드백 주시면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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