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x 브루어리304
브루어리와 맥주, 그리고 공간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했다. 세 달이 조금 넘는 기간 안에 원고에 필요한 모든 브루펍을 투어했고 글을 썼다. 게으르고 느린 나로서는 대단히 빠른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몇몇 펍은 기억에 의존해 글을 써보려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을 다녀온 곳이라 해도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펍을 새롭게 가거나 다시 갈 수밖에 없었고, 다녀오면 다행히, 대부분 그만의 이야기가 생겼다.
자체 브루어리가 있는 브루펍과 직영펍이 방문 대상 1순위였다. 그 외 자체 브루어리는 없지만 위탁 양조를 통해 그 펍에서만 마실 수 있는 자체 맥주를 제공하는 곳도 가능한 대상이었다.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펍에 대한 이야기도 있긴 한데,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예외쯤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오랜 시간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했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없다. 역시 게으른 탓이다. 물론 맥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보다야 많이 알고 마시겠지만, 전혀 학구적이지 않고 마니아 수준의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미각이 발달해 있지도 않다. 일례로 페일 라거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보는 쪽이다. 누군가 ‘카스’와 ‘켈리’, ‘테라’의 차이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 놀라며 말한 적이 있지만, 난 그렇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다양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충 즐기는 정도로 빠져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방문하는 브루펍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았고, 인터뷰도 하지 않으려 했다. 네트워크가 생기는 순간 전문적이지 않은 나는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고, 훈련되지 않은 애호가의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내가 마시는 맥주에 대한 느낌이 충분히 틀릴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투어를 하며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실은 그게 여행이기도 했다. 모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고, 예상과 달리 그런 접촉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방해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훌륭한 자산이 되었다. 이 기회를 빌려 도움을 준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서대문 영천시장 옆에는 ‘브루어리304’가 있다. 원고를 마무리하던 4월 말의 어느 주말, 304를 방문했다. 2층에 오르면 중정이 보이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아쉽게 다른 손님에게 선점되어 다른 창가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304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플루토 블론드 에일’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늘 플루토부터 주문하는데, 그날 메뉴판에 새로운 맥주가 보였다. ‘소셜 드링커스’와 함께 만든 ‘라거 에프터 올’이라는 이름의 라거. 결국은 라거라니, 맥덕들이 여러 맥주를 전전하며 돌고 돌아도 결국 찾아올 고향은 라거라는 뜻일 것이다. 그날도 많이 걸은 날이라 시원한 맥주가 필요했다. 고심하지 않고 플루토가 아닌 라거 에프터 올을 주문했다. 맥덕의 고향을 표방할 정도로 거창한 맥주, 라거 에프터 올은 과연 맛있었다. 올여름 내내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카스와 켈리, 테라에 비해 짙었고 기분 좋은 향이 났다. 아무리 미각이 뭉툭하다 해도 이 정도 구분은 할 줄 안다.
모든 맥덕의 고향이 라거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의 취향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의 라거는 아이스크림의 바닐라처럼 그만의 특징이 분명히 있음에도 기본값이라는 느낌이 있다. 늦겨울에서 봄까지 여러 도시의 브루펍을 다니며,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지면에서 10cm 정도 공중에 붕 떠올랐다. 일상에 섞인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다시 착지해 평범한 직장인의 기본값인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 나는 304에서 라거 에프터 올을 마시며 기본값으로 착지하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돌고 돌아 라거로.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일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