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Nature of Daylight’를 영화음악으로 사용하지 않기 캠페인
이 글은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 영화음악 DB를 만들기 위해 작성됐다. 그런데 그를 말하기 위해선 자꾸 반복적으로 불려 나오는 것 같은, 그의 또 다른 스코어 ‘Of the undiscovered country’를 잠시 언급해야 한다.
클로이 자오의 <햄넷>(2025)을 본 이유 중에는 ‘Of the undiscovered country’가 어느 장면에서 사용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이 음악은 애플 뮤직이 ‘네오 클래식’ 섹션에서 추천해 준 곡이었다. 운전하며 처음 들었고, 라이브 음원이었다. 막스 리히터 특유의 미니멀한 음악인데 반복적인 건 그의 다른 음악들과 마찬가지이지만 뒤로 갈수록 웅장해지는 것이 결국 내 마음을 빼앗았다. 그래서 3월에 다녀온 브루어리 투어에서도 운전 중 이 음악을 수없이 들었고, 결국 브루어리 투어 이야기를 책으로 준비하면서 책 제목도 ‘미지의 세계’로 정했다. 이젠 주야장천 음악으로만 듣던 그 스코어가 영화 <햄넷>에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됐을까, 그것이 궁금했고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화는 시작됐고, ‘Of the undiscovered country’의 도입에 나오는 코러스 부분은 영화에서 두어 장면에 사용되는 것 같았지만, 메인 선율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영화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아들 햄넷의 죽음을 자신의 극으로 승화한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만들었고, 극 중 연극이 진행되는데, 햄릿이 자기 죽음을 직감하고 감정을 터트리던 순간, 그때 관객들이 손을 내미는 최고 절정의 장면이 있다. 자 이제, 그 음악이 나오겠지. 했지만 엉뚱하게 나온 음악은 그의 스테디셀러 ‘On the Nature of Daylight’였다. 그래, 이 음악의 위대한 점이 뭔지 알고 영상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도 알며 영상의 감정을 얼마나 극대화하는지도 잘 알겠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음악은 2004년 발매된 ‘The Blue Notebooks’라는 앨범의 두 번째 트랙으로, 발매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영화음악 스코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세가 끝날 줄을 모른다. 심지어 2025년 작 <햄넷>에서 굉장히 오랜만에 쓰인 것도 아니다. 얼추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만 해도 다섯 편이 넘어서 이번 기회에 이 음악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여러 군데 쓰인 건가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더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 결과.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시리즈)에 사용된 경우가 총 17번이다. 그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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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댄 픽션 Stranger Than Fiction
마크 포스터, 2006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코세이지, 2010
스시 장인: 지로의 꿈 Jiro Dreams of Sushi
데이비드 겔브, 2011
디스커넥스 Disconnect
헨리 알렉스 루빈, 2012
럭 Luck, 1x01 Pilot
마이클 만, 2012
페이스 오브 엔젤 The Face of an Angel
마이클 윈터바텀, 2014
세르파 Sherpa
제니퍼 피덤, 2015
컨택트 Arrival
드니 빌뇌브, 2016
야누스 데이 Les innocentes
안느 퐁텐, 2016
캐슬 록 Castle Rock, 1x07 The Queen
그렉 야이타네스, 2018
토고 Togo
에릭슨 코어, 2019
눈이 부시게 10회
김석윤, 2019
이스트엔더스 EastEnders, 2020. 9. 18. on air
2020
트립 투 그리스 The Trip to Greece
마이클 윈터바텀, 2020
하녀의 이야기 The Handmaid's Tale, 4x09 Progress
엘리자베스 모스, 2021
더 라스트 오브 어스 The Last of Us, 1x03 Long, Long Time
피터 호어, 2023
햄넷 Hamnet
클로이 자오,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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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아주 촘촘하게 거의 매년 용례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이 음악의 빅팬인 엘리자베스 모스가 PD로 참여하고 출연까지 한, 음악이 나오고 14년 후에 단편영화처럼 만들어진 공식 뮤직비디오는 제외한 리스트다.
6분 30초가 넘는 이 스코어는 확실히 걸작이다. 아름답고 장중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현악기군이 처연하게 연주하지만 점점 웅장해지며 감정을 끓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이 극적인 음악이 영상과 함께하면 시너지가 난다는 걸 감독들이 모를 리 없고, 그들은 막스 리히터에게 저작료를 물어가며 20년 동안 17번 플러스알파(내가 찾지 못한 또다른 영화)만큼이나 사용해왔다. 하지만 좋은 것도 그 시효가 있는 법이다. 각기 다른 영상에 늘 같은 음악이 사용되는 것에 대한 ‘질림’은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걸 영상을 만드는, 취향이라면 자부심이 하늘 끝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아직도 막스 리히터의 치트 키를 사용하는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위의 리스트를 조사하다 누군가 더 이상 이 음악을 영화에 사용하면 안 된다라는 칼럼(‘STOP USING MAX RICHTER’S “ON THE NATURE OF DAYLIGHT” IN EVERYTHING’)을 5년 전쯤에 쓴걸 발견했다. 그의 칼럼은 누누이 맞는 말이었지만, 영상 제작자들은 그 칼럼니스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이젠 이 칼럼을 숙독하고 경청해야 한다. 자신의 영상에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이 음악이 다가오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감독, 프로듀서가 있다면 전혀 그렇지 않고, 어지간한 영상과의 조합이 아니라면 구태의연하게 느껴지기 쉬울 것이며 반복되는 용례가 쌓일수록 영상이 음악에 함몰되는 것임을 알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햄넷>이 아쉬운 거다. 그 장면에서 왜 ‘Of the undiscovered country’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스코어의 제목도 ‘to be or not to be’에서 연결되는 햄릿의 주요한 부분이었으니, 작정하고 막스 리히터가 작곡한 곡일 텐데. 분명 무슨 사연과 이유가 있었을테고, 그래서 난 그냥 평범한 영화 관람자로서 이 음악이 영화의 어디에 나오나를 끝까지 추적한 결과, 그냥 엔딩 크레딧에, 그것도 끝부분에 잠시 나올 뿐임을 확인해야 했다. 심지어 엔딩 크레딧의 길이에 맞춰 짧게 편집된 버전이었다. 이 음악에 맞춘 쿠키라도 나오려나. 나오지 않았다.
오해는 말길. 난 막스 리히터의 팬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앞으로의 다른 영화와 시리즈에서 보고 싶지는 않다.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할 도전자는 환영하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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