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을 걷다 잘 듣는 말이 있다. 도를 아십니까는 아니다. 아직 그런 유의 종교 행위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아는지 모르겠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은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와 여기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이 두 가지다.
난 둘 다 잘 응한다. 하긴 사진 찍어주는 걸 피할 까닭은 없다. 다만 나에게 부탁한 사람이 어떤 취향의 사진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가 없어 일단 찍고, 2배로 찍고 그 폰이 아이폰이면 인물사진도 시도해서 찍고 그렇게 3~4장 정도를 찍고 폰을 건네준 다음 그들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빠져나온다. 눈앞에서 내가 찍은 사진을 평가받는 기분은 그렇게 좋지 않고 사실 그리 자신도 없다. 그냥 찍어달라고 했으니 최선을 다해 거절하지 않고 나이스하게 찍어주는 것. 거기까지다.
찍어달라면 이만큼 집중해서 찍는다
길을 물어보는 쪽이 좀 더 자신 있다. 난 내가 아는 길을 물어볼 때 자세히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이리로 저리로 가시면 됩니다. 또박또박 말해준다. 초행길이라서 잘 모르면 솔직하게 바로 모른다고 말한다. 얼마전 안산 자락길을 걷고 있는데, 아주머니 일행이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내려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라고 나에게 묻길래 0.5초만에 저도 모릅니다! 라고 정확하게 말해버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들은 웃었고,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마음대로 찍은 길로 내려가는데 그분들도 나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맞는 길이었다. 잘 모르는 길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좀 더 있으면 잠시만요 어딜 가신다고요? 한 다음, 폰의 지도를 꺼내 정성껏 알려주기도 한다. 어떻게 가야 할지 잘 모르겠는 사람의 난관을 해결해 주는 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D는 그런 내가 사람들이 보기에 똘똘이 스머프처럼 보이나보다, 그런 평가를 했다. 맞는 말을 늘 얄밉게 해서 동료 스머프들에게 뻥 차여 숲속까지 날아가 거꾸로 처박히는 똘똘이 스머프말이다.
이 두 질문 혹은 부탁을 예전부터 늘 자주 받았던 건 아니다. 요 몇 년 사이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내면에서 나온다고, 내면의 똘똘이 스머프가 이제야 거침없이 나와 표정과 자세, 태도를 장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어봐봤자 모를 것 같은, 그리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표정과 자세, 태도를 가진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친구들에게 뻥 차이는 똘똘이 스머프더라도.
늘 친구들에게 차이는 똘똘이 스머프
주말에 동네에 있는 운길산 수종사를 올랐다. 주 등산로는 포장이 되어있지만 그만큼 차가 많이 다녀 걷는 사람은 먼지를 많이 마셔야 하고, 사람이 차를 피해야 하는 주객전도의 느낌이 있다. 굉장히 가파르고 위험한 길인데 꾸역꾸역 차를 몰고 오르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러다 보니 이젠 걷는 사람이 거의 사라진 등산로가 되어 버렸다. 그 차로 옆에 산길로 갈 수 있는 숨은 루트가 있긴 하다. 너무 오래 전에 가봤다는 게 문제였지만. 결국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오프로드로 거의 반 낭떠러지 같은 산길을 올라야 했다. 길도 없고 나뭇잎이 엄청 쌓여있고, 돌들은 밟으면 구르고, 나무를 피해 다녀야 하며, 곳곳에 뱀 굴이 보이는 이 무시무시한 곳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쌍욕이 나왔고, 한참을 오른 뒤 드디어 길 같은 길을 만났는데 이미 온몸은 녹초가 된 상태였다. 잘 관리된 등산길이 이렇게 소중하다. 숨을 몰아쉬며 수종사까지 겨우 올랐고, 툇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 바로 앞이 뷰 명소다.
정말 뷰 명소다
젊은 커플이 보였다. 양수리가 내려다보이는 뷰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 살짝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올 것이 왔다. 심지어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 그 순간 남의 사진을 찍어줄 여유 같은 것이 없었다. 낭떠러지 같은 길을 사투를 벌이며 올라온 직후 정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였다. 오지 마라. 남자는 오고 있었다. 그때 난 부산스럽게 배낭에서 물을 꺼내 마셨고, 물을 마시는 순간의 표정을 통해 최대한 힘듦과 만사가 귀찮음을 발산했다. 이게 먹힐까.
먹혔다. 나에게 다가오던 남자가 머뭇거리며 그냥 그 자리를 떴다. 그 순간 부탁 따위는 안 들어줄 것 같은 중년의 얼굴이 똘똘이 스머프를 이긴 것이다. 편한가? 그럴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런데 사실 똘똘이 스머프의 표정과 자세, 태도가 조금 더 좋지 않은가. 누구에게도 뭐라도 잘 알려줄 것 같은 아저씨의 인상 말이다. 그와 동시에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뻥 차이기도 하는 그런 사람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