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제각각의 시선에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를 보며 시청을 끝냈을 것이다. 어제 12화 마지막 에피소드가 방영됐다. 그간 세밀하게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등장인물의 감정을 묘사하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서 갑자기 부스터를 단 것처럼 ‘스토리’를 향해 질주하며 기어코 도달할 수 있는 해피 엔딩을 만들어 냈다. 원래 이런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16부작짜리 극본을 쓰다 갑자기 12부작으로 줄이라고 해서 이렇게 됐나 싶을 정도였다.
드라마의 주요 인물인 영화계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디테일이 이 드라마 초기에 너무 재미있었다. 그 재미가 오래 갔고, <모자무싸>에 빠져들고 끝까지 보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마치고 나니 결국 이 드라마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도 ‘분노’와 ‘짜증’과 같은, 이 드라마를 SF로 만들어버린 감정워치를 빨간색으로 만드는 그것들. 결국 난 변은아(고윤정)와 황동만(구교환) 서로의 마이너하면서도 굳건하고 확신이 있는 가늘지만 강한 선을 찾아 연결하는 녹색의 빛보다는 드라마 전반을 아우르는 황동만과 박경세(오정세)의 질투와 짜증, 분노와 증오가 뒤섞인 그 감정과 관계에 매료되고 공감한 것이다.
12회에서 박경세는 황동만에게 말한다. 이제 우리 (서로를 미워하는 것) 그만하자. 그만 제발 좀 끝내자. 그리고 길에 엎어져 운다. 왜 저렇게까지. 그러나 알 것도 같다. 그렇게까지 절박한 박경세에게 황동만은, 대게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말할 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역시 주인공이고 변은아의 케어를 받아 참을만한 사람으로 보이긴 하지만, 옆에 있으면 거지 같을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다 감정워치의 도움을 받은 황동만은 돌아와 박경세에게 사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이 변하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게 황동만이고 그게 그 사람의 매력이겠지. 자신이 영화를 얼른 찍어 형(박경세)과 같은 위치에 올라가고 싶다. 그러면 자기가 어떤 말을 하던 형은 예전처럼 짜증 나지 않을 거라고, 물론 이렇게 짜치는 대사는 아니었고 멋진 대사였을 텐데 요점은 그게 맞다. 이렇게까지 절박한 사람을 앞에 두고 난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절대 하지 않는 황동만, 이 양반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그럼으로 인해 매력덩어리인 것이다.
우리는 별로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것 같고 실제 바뀌기도 하겠지만, 그 바뀌는 범위까지가 자기 자신이고 이전과 비교해 봤을 때, 자신을 구성하는 스펙트럼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는다(그렇게 믿고 있다). 술을 먹고 취해서 해롱되는 것도, 그로 인해 성격이 돌변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도 그 사람의 일부인 것 처럼. 황동만은 적어도 그 진실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형, 나 안 그래야지 생각하지만 그게 잘 안돼. 그렇다. 인간은 그런 것이다. 그런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을 좋아할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인정해 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짜증이 나거나 그냥 싫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변은아가 황동만을 좋아했던 것처럼, 변은아가 최효진 PD(박예니)를 증오했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시선과 이유로 상대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저 사람은 이유 없이 매력 있고, 이 사람은 이유 없이 (그러나 우리는 이유가 있다고 믿지) 짜증이 난다. 이유 없이 매력적인 사람이 그리고 이유가 있다고 믿지만 실은 이유 없이 짜증 나는 사람이 똑같은 말을 내게 했을 때, 나의 감정워치는 녹색과 붉은색 양쪽 끝을 오갈 수 있다. 결국 내가 상대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황동만은 형과 나는 서로 바뀔 수 없으니, 우리가 서로 인식을 다르게 할 수 있도록 내가 형의 위치로 올라갈게, 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유일한 설루션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똑똑한 양반일세.
층간소음으로 시끄러워도 윗집과 친하고 그 집 아이들을 평소에 귀여워했다면 그 소음이 참을만하다는 유명한 SNS 격언도 있다. 별다른 데이터도 없이 내가 상대를 어떤 이유로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의 같은 말이 나에게 전혀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평소 친한 것 같았던 동료의 어떤 면이 이상하게 보이면서 그다음부터 그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가 네거티브될 수도 있고, 그러나 불행히도 평소 네거티브였던 사람의 어떤 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긍정적인 면으로 돌아서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게 또 인간의 멍청한 점 중 하나일 것이다.
‘갇히면 돌파하시오’ <모자무싸>에 자주 등장하는 건널목에 쓰여있는 말이다. 황동만은 갇힌 후 그걸 돌파했다. 황동만은 그의 영화가 잘 되어도, 왜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의 험담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그건 아무리 ‘천 개의 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변은하가 그럴싸하게 미화해도 소용이 없는 쓰레기 같은 면이다. 박경세의 상대를 질리게 하는 극강의 지질함 역시 어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컨 그 둘의 관계는 이제 달라졌을 것이다. 서로에게 똑같이 해대도 다치지 않을, 서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평소에, 드라마 말고 실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쉽지 않다. ‘(자신의 감정에) 갇히면 돌파하시오’ 이것을 해내는 것은 우리에게 모두 필요하고 절실하지만 우리는 늘 갇힌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네거티브가 강해지는 쪽으로. 불행한 일이다. 어쩌면 갇혔지만 돌파해 내고 마는 황동만의 이야기는 <모자무싸>의 감정워치 처럼, 현실에서 있기 힘든 숨겨진 SF였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