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의 일생>은 스티븐 킹의 단편집 『피가 흐르는 곳에 If It Bleeds』에 실린 짧은 작품이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의 이야기를 플래너건은 장편으로 각색했다. (아래에 최대한 스포일러를 억제하며 글을 썼지만 어쩔 수 없이 설정이나 내용이 보일 것이다. 회피하려면 지금 회피하시라. 그러나 아주 예민하지 않다면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소설은 3장으로 되어있는데 특이하게 3장부터 시작해 1장으로 끝난다(영화도 마찬가지다). 3장은 알 수 없는 세계의 종말을 그린다. 2장은 척의 가장 빛났던 순간 중 하나를 집중해서 보여준다. 1장은 척이 아이였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게 주인공의 인생은 거꾸로 간다. 결국 한 평범한 회계사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로 어떤 극적인 내용도 없다. 하지만 유능하고 저명한 이야기꾼 스티븐 킹은 평범한 사람의 일생을 놀라운 방식으로 푼다. 그 방식 속에,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들은 누구나 놀라운 삶을 살 준비가 되어있고, 그런 가치가 있는 이들이며, 우리는 누구나 반짝이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고, 자기 내면에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 놓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거장이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노련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인 편지와 같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제럴드의 게임 Gerald's Game> <닥터 슬립 Doctor Sleep>에 이어 세 번째로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았다. 스티븐 킹의 작품뿐 아니라 스티븐 킹 스러운 넷플릭스 호러 시리즈도 많이 만들었는데, 이미 노련하다는 말이다. 난 이 소설이 각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2부의 댄스 타임에 방점을 찍었으리라 짐작했다. 가장 영상으로 말하기 좋은 이야기니까. 그도 맞다. 그리고 잘 찍었다. 척 역할의 톰 히들스턴도 길쭉한 팔다리로 춤을 잘 춘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애초에 쓰고자 했던 그 메시지가 더 위에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스티븐 킹은 평범한 소재로 비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장기인 호러를 능숙하게 집어넣는다. 스티븐 킹에게는 그런 ‘따뜻한 호러’(내 마음대로 지어낸 조어다)가 종종 있는데, ‘스탠 바이 미 The Body’에서 시체를 찾아 나서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섬뜩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성장담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그린 마일 The Green Mile』에 나오는 죄수의 기괴한 능력도 이야기 전반의 따뜻함을 보조한다. <척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3장은 전체를 호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장에서의 다락방 설정 역시 호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인생에 찬사를 보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플래너건도 짧은 이야기를 장편으로 품질 좋게 각색했다. 소설의 모든 이야기를 담았고, 강조하고 싶은 신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길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메시지와 무드를 해치지 않았다. 마지막, 따뜻한 호러의 장면은 여운을 충분히 남긴다. 그 여운은 소설보다 더 좋았던 거 같다. 잊지 않고 생각난 덕에 이번 주말 <척의 일생>을 잘 봤다.
레터를 쓰며, <척의 일생>처럼 극장에서 개봉할 때 봐야겠다 싶었지만 역시나 놓치고 잊은 영화 중 연인 사이의 몸이 붙는다는 호러, <투게더 Together>가 생각났다. 다음 주말까지 생각이 유지된다면 이 영화도 보게 되겠지. 어떠려나.
참고로, 마이크 플래너건 이전에는 프랭크 다라본트가 스티븐 킹 원작 영화의 단골 감독이었다.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을 비롯해서 모두 4편을 찍었다. 그러나 마이크 플래너건은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스티븐 킹의 것이 포진되어 있어 곧 다라본트를 앞설 예정이다.
또 하나 참고 사항. <척의 일생>의 마지막, 척이 할아버지의 장례사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책에서는 없는 대목이다. 장례사는 척에게 날씨를 예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준다. 아마도 그건, 플래너건이 자신이 스티븐 킹의 광팬임을 과시하는 장면일 수도 있다. 그 설정은 킹의 최근 단편집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You Like It Darker』의 단편 ‘난기류 전문가 The Turbulence Expert’에서 따온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맞는 것 같다.
정말 마지막. 척의 할아버지가 마크 해밀인 것은 자막이 올라갈 때야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