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의 어떤 날, 『여름 맥주 영화』를 낸 출판사 일토에서 또 다른 콘셉트의 원고를 제안했다. 펍에 대한 책인데 그를 둘러싼 공간에 초점을 맞추면 어떻겠는가, 라는 것. 그 콘셉트를 발전시키다 펍과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쓸 필요는 없고, 다만, 그렇지만 결국은 그 펍에 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글이면 어떻겠는가, 『여름 맥주 영화』의 ‘6월의 완벽한 맥주’ 같은 글로 다 채우면 좋겠다라고 출판사는 그렇게 말했다. 잘 듣다 마지막에서 되게 부담이 됐다. ‘6월의 완벽한 맥주’는 반응이 좋았던 글이다. 심지어 ex-부서원 K의 결혼식 날, K의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 축사를 하며 ‘6월의 완벽한 맥주’의 마지막 문장을 하객들 앞에서 인용하기도 했다(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런 글로 다 채워 보자는 오더는 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시작을 해보겠다고 했다.
원고를 위해 가장 처음 방문한 펍은 ‘을를 서울숲점’이었다. 겨울의 서울숲을 걷다 을를에 들어가 맥덕들 사이에서 빵맥주와 스카치 에그를 먹고, 창밖의 겨울 나무를 바라보다 마지막에는 입구의 반투명 유리에 비치는 햇살이 제법 따뜻하더라로 끝나는 글이었다. 그러나 살짝 애매한 글이 나왔고, 결국 책에 실리지는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을를은 그의 본점 이천에 대한 이야기로 새로 썼다(물론 다시 다녀왔다).
을를에서 가장 좋아하는 빵맥주, 그러나 잘 없다.
원고는 정확히 2026년 설 연휴부터 시작했다. 그러니까 2월 17일부터다. 그나마 가기 쉬운 서울의 펍(을를 서울숲점에 이은 두번째는 정동길에 있는 ‘독립맥주공장’이었다)부터 돌아다녔다. 여러 번 가본 펍은 쉽게 쓸 이야기가 생길 것 같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뭔가 쓸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과 그냥 다녀온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모든 펍을 다시 다녔다. 설 직전까지 다닌 펍의 이야기를 연휴 동안 하루에 글 하나씩 썼다. 그렇게 4개의 원고를 한 번에 출판사에 넘기고 긴장의 나날을 보냈다. 이 원고들이 기각되면 다시 처음부터 써야 하고 이 원고가 재미있다면, 이런 콘셉트로 이후의 원고를 쓰면 된다. 다시 처음부터 써야 한다면… 머리가 하얬다. 그럴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랐다. 연휴가 끝나고 며칠 후, 출판사에서 재미있다는 피드백이 도착했다. 만세.
그다음부터는 주말마다 펍을 다녔고, 최소한의 휴가를 써서 두 번의 전국 투어를 떠났다. 얼마나 ‘최소한’의 휴가였냐면 모든 투어의 마지막 날에는 마지막 투어 장소(평창과 강릉)에서 새벽에 서울 상암으로 출근해야 했다. 결국 난 2차 투어를 마치자마자 내 인생에서 가장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2차 투어를 마치고 강릉에서 KTX를 타고 출근하는 중, 건너편에 경의중앙선.
펍 자체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그 펍을 둘러싼 공간 혹은 경험에 대한 글이라 글마다 펍에 대한 언급이 들쭉날쭉하다. 어떤 글은 펍의 이야기가 빼곡한 반면 어떤 글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출판사와 이야기했던 것처럼, 결국은 그 펍에 가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쓰고자 했다. 그게 성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공이었으면 좋겠다.
원고는 대략 5월 초에 다 썼다. 3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투어까지 계산하면 대단한(!) 속도임엔 틀림이 없다. 그런데 늘 그렇듯, 다 쓰고 끝도 없는 수정과 교열의 늪에 빠졌다. 구글독스로 출판사와 피드백을 주고받았는데, 지금도 유적처럼 남아 있는 원고 구글독스에는 총 82개의 탭에 10 고까지 수정한 원고가 남아 있다. 이러다 평생 수정해야 하나 싶던 어느 날 문득 종료됐고, 그걸 조판본으로 옮기니 거기서 다시 수정과 수정이 이어졌다. 뭔가 걸작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내 글은 왜 이러나 모르겠다.
크기가 작은 책이다. 결국 이 책은 어디 갈 때 배낭에 넣어도 책이란 게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부담 없는 사이즈라는 건데 여행지에서 (정작 손에 쥐면 제법 볼륨감이 있긴 하다만) 손에 들고 아 이곳에는 이런 펍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 하며 쓱 들어가 볼 수 있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한다.
원고를 쓰기 위해 펍을 다녀왔지만 결국 책에 실리지 않은 몇 군데가 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인천의 ‘엑스트라스몰 브루잉룸’이다. 이름처럼 정말 작고, 카페처럼 인테리어 한 인천 연수구에 있는 펍이었는데, ‘인천맥주’를 쓰다 보니 거기서 인천이란 도시의 모든 것을 가져다 쓰고 완벽하게 인천을 정리해 버린 느낌이 들어 인천의 또 다른 펍에 대해 도무지 쓸 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곳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인천 연수구 상가 밀집지역에 있는 엑스트라스몰 브루잉룸
이 책의 제목은 『미지의 세계』다. 왜 ‘미지의 세계’인지는 책 ‘프롤로그’에 써놨다. 이번 주 화요일(2026. 6. 23.) 서점에 풀린다. 여행과 걷는 걸 좋아하며,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 근처 펍에서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생각이 적중하길 바란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맥주와 펍을 즐기며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