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노년이 확정된 자의 맥주
어쩌다 보니 3주 만에 쓰게 되는 뉴스레터인데, 넷플릭스에 올라온 A24 호러 <언더톤>을 이야기하려 했다. 작은 공포영화인데 무척 재미있게 봐서 이런저런 말을 할 게 많을 것 같았다. 그러자니 나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나의 책 『미지의 세계』에 대해 적어야 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무얼 적지? 더 이상 쓸 말이 없는데. (다시) 그러자니 <언더톤>을 쓰는 건 맞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빈 문서를 열어놓고 한참을 노려만 보고 있었다. 무엇을 써야 하나. 쓸 말이 없으면 가만있는 게 낫지 않나, 라는 <맨 끝줄 소년>의 대사도 생각나면서, 3주만인데도 왜 이렇게 쓸 말이 없을까. 정말 난 소진된 건가. 그렇다면 왜 소진되었나. 소진된 게 맞나. 그것이 오늘의 이야기다.
작년 하반기와 올 상반기, 난 외부 수업을 들었다. 국정원에서 사이버 보안을, 카이스트 고위 과정에서 AI 관련된 것을. 공부란 것이 원래 입력 시스템이지만, 입력을 위한 내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출력 시스템이기도 하다. 늙으면 늙을수록 출력 쪽 부하가 더 많아진다. 그사이 책을 쓰기도 했다. 물론 『미지의 세계』를 말한다. 이는 입력과 출력을 동시에 수행한 경우다. 브루어리 투어를 하며 입력함과 동시에 그걸 바로 글로 모두 쏟아냈다. 4~5개월 만에 모두 해치웠는데, 입출력의 균형과 관계없이 부하가 걸릴만한 일이다. 회사의 일은 여전하다. 최근 큰 사업들이 들어오는데 올해도 마찬가지고, 회의 일정이 정말 빼곡하다. 하루 종일 회의만 하다 퇴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매번 올해까지인 것 같군,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 생각이 맞은 적은 없다. 내년에는 내년의 새로운 일이 귀신같이 벌어진다. 모두 출력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과부하의 일상을 통해 난 그만큼에 상응하는 리워드를 기대했던 것 같다. 좋은 리워드가 있다면 거기에 치어업 되어서 과부하가 걸린 줄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겠지.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본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가 결과라는 건 내가 생각한 만큼의 리워드가 따라오는 게 드물게 되어있다. 그 또한 평가의 기본 시스템이다. 늘 평가를 잘 받는 사람들이 평가 제도는 당연히 엄격한 차등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당연한 말을 하는 것이 가끔 그래서 나 혼자 짜증이 나곤 했다. 카이스트 고위 과정의 졸업 발표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과는 그저 그랬고, 책에 대한 반응도 내가 애썼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는 그저 그런 중이다.
회사에서는 최근 희한한 조직문화 컨설팅이 있었다. 그간 안 받아본 종류의 질문들을 설문한 다음, 그룹 인터뷰까지 하고, 그 분석 결과를 3시간 동안 들었는데, 발표 자료를 보니 설문에 대한 직급별, 부서별 데이터를 모두 노출하고 있었다. 난 부서장으로서 부서별 데이터의 색(빨간색으로 갈수록 네거티브, 녹색으로 갈수록 포지티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우리 부서의 많은 그리드가 노란색과 연두색에 몰려있었다. 드문드문 빨간색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아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중에서 상에 조금 가까운 정도? 그러나 솔직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냥 중일지도 모른다. 상에 가깝고 싶다는 내 체감이 그렇게 보이게 한 걸지도. 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부서장으로서 열심히 하는 중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래도 ‘중’인 것이다.
결국 이런 거다. 난 늘 열심히 한다. 미루는 불치병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잘하려고 꽤 노력한다. 이만하면 최상은 아니겠지만, 상 정도의 리워드가 와야 하는 거 아냐? 딱 그 정도로. 하지만 그에 대한 결과는 늘 중간 정도다. 운이 좋으면 중간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 모든 그룹에는 그닥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따져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기본 집단으로 하면 난 중간이나 중간에서 조금 아래쪽에 머무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쓰다 보니 답이 나왔다. 소진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받는 리워드가 적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였다. 혹은 내가 그런 사람에 불과한 것이라는 결론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까. 더 노력할 수는 없다. 힘들다. 그리고 그 노력이 리워드를 극적으로 올려주지도 않을 것이다. 남지 않는 장사다. 또 다른 해결책은 매사에 잘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그럼 내가 한 것에 대해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의 리워드는 올 것이다. 최하의 노력에 걸맞은 최하의 리워드. 운이 좋다면, 최하의 노력에 중하 정도의 리워드가 올 수도 있겠지. 그럼 남는 장사라며 기분이 째질까? 그게 솔루션이긴 한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주위의 눈이 두려워서라도, 그냥 쓸데없는 나의 기준에 따라 계속 노력은 하며 피곤하게 살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굴러왔다. 내가 그런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생 전체에 바르고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로 해탈하지는 않았다.
나의 입력과 출력의 리워드가 반드시 동일할 수는 없다는 시스템을 (물론 이해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그밖에는 대안이 없다. 그러나 말을 성인군자처럼 해댈 수는 있어도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설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난 계속 짜증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런 삶이 언제나 끝날까. 노인이 되면 모든 것이 유해지며 언제 이런 생각을 했나 싶을까?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혹 이 레터를 읽으며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느끼는 30~40대들도 중후한 중년이 되면 마음이 많이 가벼워지고 그럴 것 같나? 지금까지 이 글을 쓴 사람은 50대 중반이다. 게다가 중후하지도 않지. 10~20년 사이에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나에게도 그럴 일이 없을 거란건 거의 자명하다. 노인이 돼서도 난, 왜 난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아니면 왜 저치들은 날 몰라줘? 그렇게 투덜대며 살 것이다. 매우 우울한 노년이 확정된 셈인데 실은 대부분 인생사의 디폴트값이라 인식하고 있다. 별수 있나 계속 이렇게 굴러가는 거지. 다행히 냉장고에는 맥주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