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 줄 알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산드라 휠러가 분한 에바 스트라트는 동독 청소년 합창단 출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연구진과 우주로 나갈 사람들이 흥청이며 파티를 즐길 때 저벅저벅 걸어 나가 ‘Sign of the Times’를 멋지게 부르고 다시 저벅저벅 퇴장한다. 산드라 휠러는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에서도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을 열창하고 저벅저벅 퇴장한 이력이 있다. 노래를 잘한다. 엄청난 가창이라기보다 멋지게 부른다. 노래를 연기할 줄 아는 것이다. 아무튼 그 노래는 듣기가 좋다. 박수를 받을만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토니 에드만> 모두에서 산드라 휠러는 박수와 함께 퇴장했다.
나도 에바처럼 어렸을 때 동네 합창단 일원이었다. 여성 위주의 멤버 속에서 남성 파트를 담당하면서 좀 헷갈리고 자꾸 본 멜로디를 따라가는 거 같았지만 그래도 이게 맞겠지 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전체적으로 들리는 화음은 상당히 그럴싸했다.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도 자신은 얹혀가는 걸 좋아한다며, 합창단에서 그럴 수 있다는 말을 등장인물 중 누군가 한다. 실은 나도 그렇게 얹혀가고 있었던 거였다. 국민학교 때 3년 정도 피아노를 배운 탓에 당시 친구들에 비해 악보는 잘 볼 줄 알았고, 당김음 같은 기본박도 익숙했다. 그래서 중학교 음악 시간에 그런 걸 딱딱 맞추면 음악 선생이 나에게 진심으로 “그러취!” 라고 큰 소리로 칭찬을 해줬다. 여기까지가 가스라이팅의 역사다. 본론은 이제 나온다.
그래서 난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 줄 알았다. 산드라 휠러도 그러지 않았나. 동독 청소년 합창단 출신이라고. 나도 금천구 시흥동 은석 피아노학원 합창단 출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중학교 음악 실기로 노래를 불러야 할 때, 집에서 시험 지정 노래를 불러봤다. 피아노로 첫음을 치고 서너마디 정도 부른 후, 내 음정이 맞나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멈춘 음정의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이럴수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건반 하나 반 정도 차이나는 것 같았다. 단 4마디 만에 그렇게 음정이 낮아졌다.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음정을 높이는 것처럼 불러봤다. '띵'. 그러나 내 목구멍에서 나온 음정은 건반 소리와 여전히 맞지 않았다. 나 음친가? 에이 설마. 합창단 출신인데. 음악 선생님도 “그러취!” 추임새를 넣어주셨는데. 그러나 나만 몰랐을 뿐, 음치였다.
그즈음 변성기도 왔다. 음악 실기 시험은 왜 이리 자주 있는 건지. 도무지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음은 맞지 않았지만 그 근처까지 올라는 갔던 변성기 이전의 음역은 현격하게 낮아졌고, 그에 맞춰 부르자니 옥타브 자체를 내려야 하는 그래도 되나 싶은 노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에게 “그러취!”를 해줬던 (2년 연속 같은 분이 음악 담당이었던듯. 아니면 1학기와 2학기였을지도 모르고) 선생님에게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마도 가스라이팅의 온상 합창단에서였겠지) “선생님 두성으로 불러도 되나요?”라고 온 아이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고, 그러자 선생은 쟤가 뭐라는 거야, 하듯 약간 픽 하며 “그래보던가…” 라고 말해줬다. 어 ‘그러취! 선생님’ 어디 가신거지. ‘그래보던가 선생’의 피아노 반주는 시작됐고, 불안정한 변성기 과정의 성대에서 빈소년합창단과 같은 소리를 내고자 두성(가성)으로 노래를 시도하니 될 턱이 없었다. 시작한 노래는 마쳐야겠는데 삑사리 대잔치였고, 아이들도 웃고 선생도 웃고. 난 완전히 망했다!
생각해보면 음악을 듣고 그걸 입밖으로 내서 흥얼거리고 싶을 때 성공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꽤 나중에야 알았다. 노래방이 처음 나왔던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쩌렁쩌렁한 마이크 시스템으로 노래를 부르면 그 음이 맞든 안맞든 내가 그냥 어지간히 부르는 건줄 알았다. 하지만 반주가 사라지면 내 노래는 길을 잃었다. 머리에서 빙빙 도는 그 좋은, 심지어 쉬운 멜로디가 입 밖으로는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1,000번쯤 들은 것 같은 김광석의 노래 같은 걸 부르는 건 그냥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었지만, 그건 예외적인 학습에 의한 결과였다. 이쯤에서 인정해야 했다. 난 사실 심각한 음치였구나, 를 알게 된 후 노래방을 서서히 끊었다. 지금도 누군가 노래방을 가자고 하면 도망간다. 그렇게 몇 년. 내가 정말 그 정도인가? 에이 그 정도일리는 없잖아, 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와 노래방에 가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를 선곡한 적이 있다. 그 명료한 멜로디 라인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어서, 노래방 반주를 듣고 동시에 귀에는 이적이 부르는 노래가 나오는 폰을 꽂다시피 갖다대고 부르는데, 이번에는 박자를 하나도 맞출 수가 없었다. 이럴수가. 음치도 모자라 박치까지 있구나. 끝이다, 더 이상의 노래는 나에게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26년 최근의 일이다. 한달 여 전. 워크숍으로 대천 해수욕장에 갔다. 워크숍 멤버들이 미친 텐션에 늦은 밤까지 술을 먹고 자정이 넘은 대형 룸에서 노래들을 해대는데, 다시 내가 정말 그 정도인가 병이 도졌다. 더 이상의 노래는 나에게 없다고 다짐했는데, 술김에 패닉의 ‘UFO’를 선곡했다. 빠르고 재미있는 가사에 흥겨운 노래다. 그런데 조금 높지. 역시 역사는 배신하지 않는다. 조금 높은 구간에서 여지없이 삑사리가 났다. 거의 꽤액 하는 소리를 세 번인가 냈다. 그것도 허리를 꺾어가며. 열 몇 명이 앉아 내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거나 그러지 않나. 바로 직전 노래까지만 해도 여러 명이 튀어나오며 그렇게들 놀았다. 그런데 내가 UFO를 무대에서 홀로 짖을 때, 의자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절망적으로 말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아무도 모르네 이 노래…” 그랬다. 다들 조용했다. 복기해보자면 그들은 날 관람하고 있었을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산드라 휠러 노래 씬 같은 게 나오면, 단 한 곡이라도 저렇게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김민기가 그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분위기로는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읊조리듯이. 가창이 안 되면 노래 연기라도 안될까, 라는 망상에 빠진다. 아니다, 다시 상기하자. 나는 그 정도인 게 맞고, 더 이상의 노래는 나에게 없다는 것을. 두 번째 ‘UFO’가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