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빈둥댈 권리
주말이 다가오면 이것저것 할 일이 생각난다. 약속도 있을 수 있고, 장마 직전의 화창한 날씨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밀린 집안일이 수두룩하다. 이거 하고 저것도 해야지. 그렇지만 다 하지 못한다. 몇 가지 일은 다음 주로 미루게 되어있고, 그사이 또 다른 집안일이 생성된다. 당면한 모든 집안일을 클리어한다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다. 담배를 끊은 사람, 탄수화물을 끊은 사람, 그리고 주말을 계획대로 보내는 사람. 대강 3대 독한 사람들 되겠다.
이번 주말 난 제법 분발했다. 어쩌다 보니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이 시작됐는데, 나의 노동시간과 동일한 시간에만 문을 여는 동네 세탁소에 드디어 마지막 봄옷을 맡길 수 있었다. (세탁소에서 옷을 찾기 위해 재택을 신청해야 할 판이다) 차도 정비소에 맡겼다. 기어를 주행에 놓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덜덜덜 하는 현상이 생겨서 맡긴 건데 그건 잘 모르겠다며 엔진오일, 브레이크 오일, 타이어 두 개를 갈 때가 되었다고 해서 갈게 됐다. 결국 토요일에 차를 모는데 그 덜덜덜이 너무 심해지면서 견인해서 다시 정비소에 들어갔고, 아무래도 엔진의 점화 플러그를 갈아야 할 것 같다는 추가 진단이 나왔다. 좀 진작에 해주지. 어느덧 15년을 탄 차다.
아파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묶어 놓은, 올해 아직 개시하지 않은 자전거의 먼지를 모두 닦고, 근처 자전거포에서 타이어 공기도 주입해 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놨다. 헬스장을 다시 등록했고, 봄에 입었던 아우터를 죄다 빨래방 가서 세탁하고 옷이 줄어들까 저온으로 건조한 옷을 다림질하며 일일이 펴고 또 말렸다. 화장실 청소를 했고, 곧 닥칠 장마를 대비하기 위해 물먹는 하마를 몇 개 샀다. 아무래도 창가 쪽 책이 눅눅해져서 그쪽에는 제습제를 넣고 있다. 책장 안에서 몇 개월째 방치된 제습제를 빼서 버리고 그러는 김에 책장의 책도 죄다 먼지 털고, 재활용으로 버릴 거 버리고, 장르에 따라 위치를 옮길 것 옮기고, 그러면서 또 옛날 책 들추면서 딴짓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금은 일요일 자정이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한 것 같지만 사실 책장은 절반밖에 정리하지 못했고, 반년은 미룬 것 같은 화장실 타일 줄눈 작업과 실리콘 작업도 미제의 살림이 되었으며, 내 방에 불을 끄면 딱 소리 나는 누전 현상도 아직 그대로다. 집안일에 완전히 최선을 다한 건 아닌 것 같다. 주말 모두 거의 9시에 일어났고 일어나서는 TV를 보며 빈둥대기도 했다. 좀 더 일찍 일어나 바로 일을 시작했으면 벌써 다 끝내고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창가에 서서 석양을 보며 뿌듯해했을지도 모르지. 난 역시 계획적이고 추진력이 넘치는 사람이야, 하면서. 하지만 난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나에게 빈둥거림은 주말에 해야 할 여러 가지 중 필수 항목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빈둥대지 말고 해야 할 일을 바로 하면 되잖아, 는 나에게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빈둥거림은 ‘해야 할 일’,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집안일이 산적해 있지만 그를 위해서는 빈둥거리는 시간도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고로 앞서 말했던 걸 번복할 수 있다. 난 사실 이번 주말에 최선을 다했다.
각자 사정에 따라 빈둥거림이 사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시간이 온다면 적극적으로 빈둥거려야 한다. 평일에는 회사까지 출퇴근하며 일에 시달리다 주말이 왔는데 밀린 집안일이 한가득이더라, 어쩌겠나 하긴 해야지. 하지만 빈둥댐과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주말에도 새벽에 일어나 샤워부터 하고 청소기를 돌릴 수도 있지만 잊지 말자. 빈둥거림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적극적으로 쟁취할 권리라는 것을. 엔진오일과 같다는 것을. 그래야 우리는 산다. 아닌 것 같다고? 우다다다 해치우는 게 성질에 맞다고? 흠... 그럼 수정하겠다. 나는 그래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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